LG그룹이 달라졌다. 매년 말 일괄적으로 정기 인사를 단행하는 관행을 깨고 조기 이사회를 통해 주력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의 최고경영자(CEO)를 전격 교체했다. 지난해 6월 취임한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인사 스타일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 계열사 실적이 전반적으로 악화하는 상황에서 ‘책임경영’과 ‘성과주의’라는 LG의 인사 원칙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라는 관측이다. 주요 계열사 부회장단이 회장을 보좌했던 기존의 ‘6인 부회장 체제’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구광모式 '책임경영·성과주의' 인사 본격화
구광모 스타일 인사 본격화

LG디스플레이는 16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이날 사의를 밝힌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의 의사를 수용해 정호영 LG화학 사장을 LG디스플레이의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한 부회장이 LCD(액정표시장치)에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의 사업구조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실적이 악화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용퇴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이 주력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 CEO를 연말 정기인사 이전에 교체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룹 총수 교체 이후에도 주력 계열사 여섯 곳 중 다섯 곳의 CEO를 유임시킬 정도로 안정을 중시해왔기 때문이다. 2010년 9월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스마트폰 대응 전략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용퇴한 이후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박진수 LG화학 전 부회장이 물러나고 신학철 부회장이 선임됐지만 이는 ‘세대교체 인사’ 성격이 강했다.

LG디스플레이 상황은 당시 LG전자 때보다 더 엄중하다. 2012년 LG디스플레이 CEO로 취임한 한 부회장은 그해 2분기부터 2017년 4분기까지 23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이를 통해 세계 1위 디스플레이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LG디스플레이는 2017년 중국 BOE에 세계 1위 LCD 업체라는 타이틀을 내준 뒤 LCD에서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해 OLED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했다. 하지만 올 들어 중국발(發) 공급 과잉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된 데다 미·중 무역분쟁까지 겹치면서 LG디스플레이 실적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상반기 5007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CFO가 ‘구원투수’로 등판

후임을 맡은 정 사장은 LG그룹 내 ‘정통 재무 라인’으로 꼽힌다. LG전자 영국 법인장을 거쳐 LG전자·LG디스플레이·LG생활건강·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냈다. 올해부터 LG화학에서는 CFO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겸임했다. 핵심 계열사를 모두 섭렵한 만큼 지난해 말 인사 때부터 주요 계열사 CEO 후보군으로 꾸준히 거론됐다. 특히 2008년부터 6년 동안 LG디스플레이 CFO로서 사업 전략과 살림살이를 맡아오면서 디스플레이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CFO 출신이 수장을 맡게 되면서 업계에서는 보다 강도 높은 사업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LG디스플레이는 손실이 불어나는 경기 파주 8세대 LCD 라인 폐쇄를 검토 중이다. OLED로의 사업 구조 재편을 위해 조(兆) 단위 투자가 줄줄이 예정돼 있어 자금 확보를 위한 인력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6000명에 가까운 LCD 관련 인력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력 감축뿐만 아니라 LCD 사업 매각 등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관심은 올 11월로 예정된 LG그룹 정기 임원인사에 쏠리고 있다. 구 회장의 파격인사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고, 그룹 차원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 본격화되면서 전략·재무통 발탁 여부도 관심이다. LG디스플레이를 이끌게 된 정 사장을 포함해 권영수 (주)LG 부회장, 홍범식 (주)LG 사장 등이 그룹 내 대표적인 전략·재무통으로 꼽힌다.

고재연/황정수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