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 등 ‘강성’ 노동조합들이 ‘꼬리’를 내리고 있다. 여름휴가를 마친 주요 회사 노조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과 관련해 이번주 본격 ‘투쟁 깃발’을 들어올리려던 계획을 접으면서다. 미·중 무역분쟁, 한·일 경제전쟁 등 악재가 쏟아지는 와중에 “돈을 더 달라고 파업할 때냐”는 비판이 거세지자 노조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업계 ‘맏형’인 현대차 노조는 13일 쟁의대책위원회(쟁대위)를 열고 파업을 보류하는 대신 사측과 교섭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오는 20일까지 최종적인 추가 집중교섭 기간을 두기로 했다. 19일부터 평일 잔업과 휴일 특근은 거부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노조 관계자는 “13일부터 8일간 교섭을 벌인 뒤 20일 쟁대위를 다시 열어 향후 투쟁 일정과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며 “파업권을 노조위원장한테 위임했기 때문에 언제든 즉각적 파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대차 노조는 이미 합법적 파업권을 손에 쥔 상태다. 지난달 30일 찬반 투표에서 조합원(재적 인원 기준) 70.5% 찬성률로 파업을 가결해놓고, 이달 초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중지’ 결정까지 받아놨다.

기아차 노조도 마찬가지다. 지난 12일 쟁대위를 열고 파업 대신 추가교섭을 선택했다. 이달 말까지 2주간 사측과 집중교섭을 한 뒤 26일 쟁대위를 다시 열기로 했다.

파업권을 확보한 한국GM 노조도 최근 사측과 교섭 날짜를 다시 잡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등 철강·조선업계 노조도 파업을 자제하고 눈치 작전에 들어간 분위기다.

이들 강성 노조가 투쟁 깃발을 일단 내려놓은 이유는 나빠진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미·중 무역분쟁으로 대내외 경제여건이 급속도로 악화한 상황에서 파업에 나섰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노조는 파업을 자제하고 사측은 전향적으로 협상해 해결책을 찾아달라”고 요청한 것도 노동계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관측도 있다.

업계에선 ‘차(車)·철(鐵)·조(造)’ 노조가 사측과 ‘형식적 추가 교섭’을 거친 뒤 이달 말부터 파업에 나설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비판적 시선을 피하기 위해 명분을 좀 더 쌓은 뒤 파업에 들어갈 것이란 관측이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