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항공사에 하늘길을 다 열어주면 20만 개의 항공산업 일자리가 사라진다.”

대한항공 노동조합과 아시아나항공 열린조종사 노조 등이 소속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항공산업연대는 지난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동 항공사의 증편 요구를 불허하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다음달 7~8일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간 항공회담을 앞두고 항공업계가 중동 항공사의 노선 확대에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과 UAE 간 노선 증편이 이뤄지면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동 항공사들이 유럽과 아프리카 등 장거리 항공 수요를 빼앗아갈 것이란 우려에서다.
중동發 "하늘길 확대" 공세…떨고 있는 국내 항공사들
UAE 측 점유율 80% 웃돌아

30일 업계에 따르면 UAE는 다음달 항공회담에서 한국~UAE 항공 노선에 대해 주 7~14회 증편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에미레이트항공이 인천~두바이 노선을, 에티하드항공이 인천~아부다비 노선을 주 7회 운항하는데 이를 각각 주 14~28회로 늘려 달라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인천~UAE 노선은 현재 14회에서 최대 56회까지 증가한다. 한국에선 대한항공만 인천~두바이 노선을 주 7회 운항하고 있다.

운항 중인 항공기도 양국 간 차이가 크다. 에미레이트·에티하드항공은 480석이 넘는 초대형 A380을 투입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218석 규모의 중형 항공기 A330을 운항 중이다.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UAE 항공 여객 65만 명 중 81.5%인 53만 명이 에미레이트·에티하드항공 등 UAE 항공사를 이용했다. 탑승률도 에미레이트항공(84%)과 에티하드항공(82%)이 대한항공(71%)보다 높다.

韓 항공사 유럽 노선 직격탄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UAE의 노선 증편 요구에 대해 유럽으로 가는 한국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로 보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지난해 에미레이트항공(인천~두바이) 탑승객 중 72%, 에티하드항공(인천~아부다비) 탑승객의 63%가 UAE를 거쳐 유럽이나 아프리카로 떠났다.

중동 항공사의 무기는 한국 항공사보다 20~30% 싼 가격이다. 오는 9월 인천~두바이~파리 왕복 항공편을 에미레이트 항공으로 이용하면 이코노미석 기준으로 최저 100만원 수준이다. 인천~파리 왕복 대한항공 직항편을 타면 최저금액이 130만원이다.

중동 항공사들이 항공권값을 낮출 수 있는 비결은 UAE 정부의 보조금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메리칸항공과 델타항공 등 미국 항공업체들은 UAE 등 중동 국가들이 2004년 이후 자국 항공사에 무이자 대출과 공항세 보조금 등으로 520억달러(약 61조원)를 지원했다고 주장한다.

최대영 한국노총 항공산업연대 의장(대한항공 노조위원장)은 “국적 항공사가 철수하고 나면 중동 항공사들이 가격을 올려 탑승객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상 노선이 한 개 사라지면 1500~1900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