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한·일 간 경제 갈등으로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일본의 수출 규제 때문에 주요 부품·소재를 수입하기 어려워진 기업들이 독일 등 다른 국가로 눈을 돌릴 경우 무역보험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인호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사진)은 최근 서울 서린동 무보 본사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수입하기 어렵다면 수입처를 다변화할 수밖에 없는데, 기업들은 신규 위험을 보험으로 커버해야 한다”며 “대체 수입국으로는 독일 러시아 중국 등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미·중 무역분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데다 한·일 갈등까지 터져 올해 수출 전망이 더욱 어두워졌다”며 “상황을 반전시키기까지는 당초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부와 무보는 당초 올 하반기부터 수출이 호전될 것으로 봤다. 수출의 ‘턴어라운드’ 시점이 다소 지연될 수 있다는 게 이 사장의 관측이다.

▷수출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대외 환경이 악화할수록 쇠사슬의 가장 약한 고리인 중소·중견기업이 먼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외부 충격이 오면 중소·중견기업 수출이 먼저 타격을 받기 때문에 적기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출 활력을 되살려야 하는 최전방 공기업으로서 무역금융 여력을 총동원할 것이다.”

▷무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무역보험은 한국 기업들이 물건을 수출하고 외상대금을 받지 못하거나, 금융회사가 대출을 내주고 회수하지 못해 발생하는 손실을 보상하는 정책보험이다. 가입 대상이 무역 관련 채권이란 점만 다를 뿐 사고 및 손실에 대비하는 일반 자동차보험과 원리가 같다. 무보는 이런 무역보험 제도를 전담하는 공적 수출신용기관이다. 무역보험 제도는 1969년 시작됐지만 1992년 무보 설립 전까지는 대한재보험공사, 한국수출입은행 등이 위탁 운영했다.”

▷한 해 수출지원 규모는.

“작년 수출지원액은 총 149조원에 달했다. 중소기업에만 한 해 동안 52조원의 무역보험을 실행했다. 역대 최대였다. 한국이 작년 처음으로 6000억달러의 수출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무보 설립 당시 무역보험액이 1조8000억원이었는데, 그동안 80배 넘게 성장한 것이다.”

▷수출보험 종류가 많은데.

“무역보험은 크게 보험과 보증으로 나뉜다. 보험은 단기 및 중장기 수출보험, 환변동 보험 등이 있다. 단기 수출보험은 기업이 수출 계약을 맺고 물건을 선적했으나 물건값을 받지 못해 입게 되는 손실을 보상한다.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다. 대기업부터 영세 중소기업까지 폭넓게 이용하고 있는 대표 상품이다. 중장기 수출보험은 조금 다르다. 결제기간이 2년을 초과하는 플랜트나 선박 등 자본재 수출 계약부터 해외 수입자의 구매자금 대출까지 망라한다. 해외 프로젝트 수주를 돕는 제도다. 환변동 보험은 환율 변동으로 입을 수 있는 손실을 보상하거나 이익을 환수하는 상품이다. 환변동 걱정 없이 본연의 수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수출신용보증 제도란 무엇인가.

“기업이 수출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거나 수출 채권을 조기에 현금화할 수 있도록 보증하는 제도다. 담보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신용도를 무보가 보완해주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도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무역보험으로 위기를 극복한 사례는.

“크게 보면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들 수 있다. 무역보험이 수출을 견인하면서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수행했다. 작년 역대 최대 수출을 기록한 것도 신시장과 신산업 위험을 무보가 적극 떠안은 데 기인한 부분이 크다. 개별 기업의 위기극복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예컨대 무보는 2008년부터 충남의 한 중소기업 수출채권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왔다. 작년 터키 수입자에게서 300만달러를 회수하지 못했으나 무보가 보험으로 보상했다. 이 회사는 연수출 5000만달러를 돌파하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올해 국내 수출 전망이 불투명하다.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안갯속이다. 미국과 중국 간 충돌로 세계 교역량이 줄고 성장 둔화 전망이 우세해졌다. 올 1분기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침체 우려도 있다. 정부가 지난 3월 수출활력 제고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런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무보는 수출채권 조기 현금화 보증, 수출계약서만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수출계약 기반 특별보증 등으로 위기 탈출에 힘을 보태고 있다.”

▷기업들에 주문하고 싶은 게 있다면.

“수출기업들이 무역보험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위험이 큰 신시장·신산업에 도전할 때 무역보험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수출에 따른 위험과 불확실성을 무역보험에 맡기고 기술력 개발 등 경쟁력 향상에 전념할 수 있다. 무보는 인력과 조직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도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무역보험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무보는 무역보험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무역보험과 무역실무를 체계적으로 교육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방 기업을 위해 각 지역을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작년 하반기에는 ‘트레이드-슈어(Trade-Sure) 컨설팅 센터’의 문을 열었다. 영세·초보기업을 위한 종합 수출컨설팅을 무료로 제공하는 곳이다. 20년 이상 경력이 있는 무역보험 전문가와 법무·회계 등 외부 전문인력이 1 대 1 컨설팅을 해준다.”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활동도 하는가.

“국내 대표적인 금융공기업으로 당연한 일이다. 대표적인 게 최근 개최한 벤더(Vendor) 페어다. 해외 우량 수입자를 초청해 수출상담회를 여는 것이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우량 거래처 확보를 돕기 위해서다. 무보 리서치센터도 한국 사회에 적지 않게 기여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무역보험 운영에 필수인 수입자 정보와 국가·산업자료, 경제지표 등을 모두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수출 기업이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외환시장 정보도 마찬가지다.”

▷최고경영자(CEO)로서 무보 비전을 소개한다면.

“무보는 정책금융기관이다. 해가 떴을 때 우산을 주고 비올 때 걷는 잘못을 범해선 안 된다. 한국 수출 기업을 믿고 시장 위험을 적극 부담해야 한다. 올해는 무역보험 시행 50주년이 되는 해다. 1969년부터 정책금융의 한 축을 맡아온 무역보험 기관으로, 엄중한 수출 여건과 뒷걸음치는 수출실적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 신시장 및 신산업 지원에 역점을 둘 것이다. 최근 핀테크사업부와 고객가치부를 신설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