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이번주부터 IM(정보기술&모바일)·CE(소비자가전) 부문 경영진을 연이어 소집해 긴급 경영전략회의를 연다. 일본 출장 복귀 직후인 지난 13일 일본 수출 규제 확대 가능성에 대비해 반도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TV 관련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 마련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경제계에선 이 부회장이 대내외 악재가 겹친 삼성의 현재 상황을 ‘사상 초유의 위기’로 진단하고 본격적인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용, 긴급회의 릴레이 소집…스마트폰·TV도 '컨틴전시플랜' 짠다
한 달 만에 무선 사장단 회의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번주 중에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무선사업부 사장단 회의를 주재할 예정이다. 회의일은 18~19일 중 하루가 거론되고 있다. 이 부회장이 IM 부문 경영진 간담회를 여는 건 지난달 14일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이 부회장은 TV 사업을 담당하는 CE 부문 VD(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경영진 회의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VD사업부 경영진이 해외 출장 중인 것을 감안할 때 회의는 다음주 중 열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사장단 회의는 일본 수출 규제 확대 가능성에 대비한 컨틴전시플랜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일본 출장(7월 7~12일)에서 복귀하자마자 반도체·디스플레이 경영진을 소집해 “일본이 수출 규제를 확대하면 스마트폰, TV 등의 생산도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다”며 “상황별 대응책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무선사업부와 TV를 맡고 있는 VD사업부는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 등이 포함된 컨틴전시플랜을 마련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수출 규제가 장기화하고 확대되면 TV에 들어가는 메모리반도체, 패널 수급과 일본산(産) 핵심 부품 조달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며 “사업 체질을 강화할 수 있도록 단기·중장기 전략을 함께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 위기 심각해

경제계에선 이 부회장이 비상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것에 대해 ‘총수가 직접 나서야 할 정도로 삼성의 경영 환경이 안 좋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삼성이 무차별적인 검찰 수사 등 ‘외풍’에 흔들렸다면 이제는 기업의 존재 이유인 ‘본업’에서의 위기까지 겹쳤다는 얘기다. 삼성전자 사업을 지탱하고 있는 두 축인 스마트폰과 반도체 실적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1~3월) IM 부문 영업이익은 2조2742억원으로, 1년 전보다 39.6% 줄었다. 반도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올 1분기 영업이익은 3조5361억원으로, 작년 1분기(11조7636억원) 대비 69.9% 급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세계 경기 위축에 수요 개선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며 “일본 정부가 삼성을 표적으로 한 듯한 수출 규제에 나서면서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무리한 수사로 발목 잡지 말아야

그동안 삼성 위기 수습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삼성전자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는 작년부터 이어진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로 사실상 무너진 상황이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와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사장 재수사를 거쳐 결국 이 부회장을 소환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재계에선 주력 사업과 함께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 등 신(新)사업을 챙겨야 할 이 부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삼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합법이라고 인정받았던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를 ‘위법’으로 몰아가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무리한 수사”라며 “경제 상황이 안 좋고 수사의 정당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 부회장 등을 굳이 소환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황정수/고재연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