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무차별 수사에 日은 반도체 '정밀 타격'…'복합 위기' 빠진 삼성
화웨이가 미국 정부의 집중 포화를 맞던 지난달 5일.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삼성도 화웨이처럼 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중국 정부를 굴복시키기 위해 화웨이를 공격하듯, 삼성도 언젠가 국가 간 분쟁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우려는 한 달 만에 현실이 됐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 삼성전자가 흔들리고 있다. 경제계에선 일본 정부의 ‘표적 보복’에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세계 경제 위축, 주력 사업의 실적 부진, 검찰의 무차별 수사 등이 겹치면서 삼성이 ‘사상 초유의 복합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檢 무차별 수사에 日은 반도체 '정밀 타격'…'복합 위기' 빠진 삼성
실적 회복 쉽지 않아

삼성의 위기는 실적 지표를 통해 확인된다. 1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제시한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컨센서스(전망치 평균)는 26조7450억원이다. 지난해(58조8867억원)의 반 토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주력 제품인 메모리반도체와 스마트폰 사업이 동반 부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D램 가격 지표로 쓰이는 DDR4 8기가비트(Gb) 고정거래가격은 지난해 9월 8.19달러에서 지난달 3.31달러로 59.6% 급락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지난 1분기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19.2%)은 1위지만, 중저가 제품 확대 전략으로 수익성이 크게 나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의 실적 개선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로 글로벌 경기가 얼어붙고 있는 영향이 크다. 일본은 ‘징용공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세 가지 핵심 소재의 수출을 규제하고 나섰다.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는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이어지는 삼성전자 공급망의 입구부터 틀어막겠다는 게 일본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생산차질 우려로 일시적으로 반도체 현물가격이 소폭 반등하고 있지만 일본 경제 보복이 장기화하면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진단이다.

돌파구 찾아 나선 이재용 부회장

경제계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일부터 이날까지 일본에서 현지 정·재계 인사들을 연이어 접촉한 것에 대해 ‘총수가 직접 나서야 할 정도로 삼성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 9일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개막한 선밸리 콘퍼런스에도 가지 않았다. 이 행사는 미국 투자은행(IB) 앨런앤코가 여는 비공식 사교모임으로 세계 산업·금융계 저명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다. 올해는 데이비드 은 삼성전자 최고혁신책임자(CIO)와 패트릭 쇼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상품혁신팀장(부사장)이 이 부회장을 대신해 참석했다.

이 부회장의 적극적인 행보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크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4대 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평소 네트워크가 있는 일본 금융권과 고객사 고위급을 만나 삼성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하는 정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본질 비껴간 삼성바이오 수사

이 부회장의 앞엔 적지 않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미래 먹을거리로 꼽은 바이오사업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검찰 수사로 만신창이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은 지난 10일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를 재소환하는 등 관련자 ‘줄소환’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까지 구속된 삼성 임직원만 8명에 달한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건의 본질인 ‘분식회계’ 여부가 결론 나지도 않았는데 수사 방향이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분식’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전방위 검찰 수사로 시장에서 삼성바이오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유럽 시장에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공급하며 기지개를 켰지만 미확인 분식 의혹으로 평판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는 얘기다.

황정수/고재연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