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파티·모임용으로 구매 급증
작년 와인 수입액 '사상 최대'

주 52시간제로 단체회식 줄고
홈술·혼술 문화 확대도 영향
‘이번 모임은 5만원, 와인 BYOB(Bring your own bottle: 당신의 술을 가져오세요)로!’
와인시장 뜻밖의 큰손 '2040 여성'

서울 송파구에 사는 35세 주부 송다빈 씨는 2년째 매달 친구들과 모임을 한다. 모임 장소는 와인바나 레스토랑이 아니라 모임 멤버들의 집. 금액대를 정해 마시고 싶은 와인을 한 병씩 가져온다.

가정용 와인 판매가 빠르게 늘고 있다. 편의점의 와인 판매는 지난해 45.2% 증가했다. 대형마트에서 전체 주류 중 와인 판매 비중은 지난해 22.7%를 기록해 처음으로 맥주 매출 비중을 넘어섰다. 와인바나 레스토랑에서 마시는 고급 주류이던 와인이 골목과 집안 등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지난해 와인 수입액이 전년 대비 16.4% 늘어난 2억3682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데도 이런 수요가 크게 기여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와인시장 뜻밖의 큰손 '2040 여성'

20~40대 女, ‘와인 큰손’ 떠올라

와인은 1988년부터 수입됐다. 수입은 계속 증가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한 번 꺾였다. 이후 와인 수요는 크게 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위축기를 맞았다. 와인 수입액은 2007년 정점을 찍은 뒤 한동안 1억달러대에 머물렀다.

이 시장을 다시 살린 건 20~40대 여성이다. 20대 여성은 편의점에서, 30~40대 여성은 마트와 로드숍에서 각종 모임이나 홈파티용으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사슴 와인’이라 불리는 칠레 와인 ‘푸두’는 2017년 3월 편의점에 출시돼 지금까지 15만 병이 팔리는 기록도 세웠다.

주 52시간 근로제 등의 여파로 단체회식 문화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와인앤모어 광화문점 관계자는 “퇴근시간에 찾아갈 와인을 1인당 한 병씩 점심시간에 미리 결제하고 포장을 맡기는 직장인이 많다”며 “목요일이나 금요일에는 포장 주문이 몰린다”고 전했다.

와인시장 뜻밖의 큰손 '2040 여성'

이마트 등 대형마트와 하이트진로, 롯데주류 등 대기업이 직접 와인 수입과 유통에 뛰어든 것은 가정용 와인 시장을 키우는 기폭제가 됐다.

이마트 ‘국민와인 프로젝트’ 등의 행사로 가성비 좋은 와인이 시장에 풀리면서 와인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신세계그룹의 와인 수입사 신세계L&B는 2017년 매출 기준으로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매출은 935억원으로 전년보다 271억원 늘었다. 나라셀라, 아영FBC, 금양인터내셔널 등의 매출도 일제히 늘었다.
와인시장 뜻밖의 큰손 '2040 여성'

위스키 접대 사라진 자리에 와인

와인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면서 외식업계 지형도 바뀌고 있다. ‘콜키지(손님이 주류를 직접 들고가면 식당이 잔을 내주는 서비스) 프리’ 등을 통해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식당이 크게 늘었다. 일부 와인바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하던 서비스가 서울 시내 일식집, 고깃집과 한정식집까지 확산됐다.

저렴한 가격으로 와인을 ‘잔술’ 등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와인 한 잔’ ‘와인주막 차차’ 등의 업체도 생겼다.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내추럴 와인 시장도 커지고 있다. 포도 재배에서 양조까지 화학적 요소를 배제한 와인인 내추럴 와인은 약 3년 전 프랑스와 일본 등을 거쳐 국내로 들어왔다.

서울 회현동 피크닉, 청담동 6-3, 이태원 슬록 등의 전문점이 문을 열었고, 꺄브벵베 비노테카 비노스앤 등 전문 판매점도 생겨났다. 마지황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우러지는 와인은 ‘홈술’ 문화가 확산하면서 지속적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며 “20~30대 여성이 즐기는 혼술·홈술 문화가 와인 시장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때 많았다가 자취를 감췄던 와인 소매점도 다시 등장했다. 아파트단지 주택가나 일부 상권을 중심으로 잔술로 와인을 팔거나 편집숍으로 운영하는 곳들이다. 나라셀라는 이 시장을 겨냥해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상가에 보틀숍과 와인바를 합친 가게를 내기도 했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와인 열풍이 강하게 불 당시 와인 교육기관과 각종 소믈리에 대회가 생겨났고, 그 사람들이 현재 와인업계에서 일하며 세미나와 교육을 주로 하고 있다”며 “단순히 양적 성장만이 아니라 와인 시장의 질적 성장을 앞장서 이끌고 있다”고 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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