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6세대 낸드플래시를 양산한다고 26일 발표했다. 2004년 뒤늦게 낸드플래시 시장에 뛰어든 지 15년 만에 세계 1위인 삼성전자보다 더 빨리 신제품의 상업생산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등으로 위축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상황을 기술력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하이닉스, 세계 첫 128단 4D 낸드 양산
세계 1위 삼성과 대등한 기술력

SK하이닉스는 이날 세계 최초로 128단 1Tb(테라비트) 트리플레벨셀(TLC) 4D(4차원) 낸드플래시를 양산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5세대 낸드플래시인 96단 4D 낸드 개발 이후 8개월 만에 6세대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1Tb 128단 낸드는 6세대 낸드로 한 개의 칩에 3비트(bit)를 저장하는 낸드 셀 3600억 개 이상을 집적한다. 성인 남자의 손톱보다 작은 반도체 칩에 4GB(기가바이트) 풀HD급 영화 32편을 저장할 수 있다.

업계가 특히 놀란 것은 세계 1위 삼성전자보다 빠른 제품 개발 속도다. 5세대 낸드 양산 발표를 SK하이닉스보다 6개월가량 빨리 한 삼성전자도 6세대 낸드 제품은 양산 테스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3~5위권으로 평가받던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기술력이 삼성전자와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의미”라고 했다.

SK하이닉스가 2004년 낸드플래시 제품 개발에 처음 성공한 이후 삼성전자보다 낸드 신제품을 더 빨리 양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보다 11년 빠른 1993년 16Mb(메가비트) 낸드플래시를 처음 개발했다. SK하이닉스의 96단 4D 낸드 제품 용량은 2004년 512Mb에서 올해 1Tb로 15년 만에 2048배 커졌다.

메모리 불황, 기술력으로 돌파

SK하이닉스가 제품 기술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비결은 저장 공간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적층 기술에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512Gb급 96단 낸드 개발을 발표하면서 셀 작동을 관장하는 주변부 회로인 페리를 데이터 저장 영역인 셀 아래에 배치해 공간 효율을 높인 PUC(peri undercell) 기술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기억을 저장하는 메모리 공간인 아파트(셀)에 필요한 주차장(페리)을 아파트 지하에 둔 것이다. 과거 건물 옆에 짓던 것과 비교하면 제조 안정성과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어 ‘4차원(4D) 낸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128단 4D 낸드는 5세대인 96단 대비 생산성을 40%, 데이터 처리 속도는 15% 안팎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이석희 사장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승패를 가르는 경쟁력은 ‘기술’로 수렴된다”며 임직원들에게 미세공정 기술의 혁신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타격이 가장 큰 메모리 반도체 업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화웨이 등 중국계 스마트폰 업체에 납품하는 제품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128단 낸드를 올해 하반기부터 판매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차세대 모바일용 저장장치 UFS 3.1 제품을 개발해 주요 스마트폰 고객사에 공급할 예정이다. 현재 광범위하게 쓰이는 512Gb 낸드보다 두께가 얇으면서도 소비전력이 20% 낮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