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와 FCA의 합병, 시너지 있을까

어디서 생산되느냐를 떠나 독일에서 시작된 폭스바겐그룹, 다임러그룹, BMW그룹이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한 자동차는 모두 1,672만대에 달한다. 이 가운데 폭스바겐그룹(1,063만대)의 비중이 절대적이지만 다임러와 BMW의 경우 프리미엄 브랜드가 대부분인 점을 감안하면 유럽에서 독일차의 강세는 끊이지 않는 셈이다.
[하이빔]독일차에 맞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동맹


이 같은 독일차의 강세에 위기를 느끼는 곳은 비슷한 시기에 자동차 역사가 시작된 이태리와 프랑스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대표 브랜드로 여겨지는 피아트의 위기감은 일찌감치 감지됐다. 페라리, 마세라티, 알파로메오, 피아트 등의 브랜드를 유지하는 중이지만 규모의 중심이 돼야 할 '피아트'가 주춤하면서 이태리 자동차산업은 유럽 내에서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2009년 미국 금융위기 때 어려움을 겪던 크라이슬러를 인수, FCA로 덩치를 키우며 미래를 도모하는 중이지만 피아트의 존재감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크라이슬러가 짚의 선전에 힘입어 지난해 FCA 글로벌 판매 484만대의 절반이 넘는 253만대를 차지해 위기를 일부 상쇄시킨 점은 다행으로 꼽힌다.

이탈리아와 함께 독일의 강세를 시시각각 견제하는 곳은 르노그룹과 PSA가 버티는 프랑스다. 두 회사가 지난해 글로벌에 판매한 완성차는 독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775만대에 불과하다. 물론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만 놓고 보면 1,067만대로 글로벌 2위지만 르노만 떼어내면 프랑스 또한 독일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르노는 올해 1~4월 글로벌 판매가 전년 대비 6.3% 감소한 122만대에 그치면서 오히려 닛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을 견제하되 미래비전 공유 차원에서 FCA에 손을 내민 곳은 PSA다. 지난 3월 PSA는 EV 개발 등에서 속도를 내기 위해 FCA에 공동 개발을 제안했고, FCA는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그러나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자는 PSA의 협업 확대 제안과 달리 FCA는 오히려 르노에 관심을 나타냈다. 유럽과 미국을 제외한 취약한 시장에서 르노의 파트너인 닛산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어서다. 동남아는 물론 FCA가 진출하지 못한 글로벌 곳곳에 확보된 닛산의 네트워크는 FCA가 목말라했던 글로벌 확장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반면 르노는 FCA와 손잡고 우선적으로 안방인 유럽 시장을 독일차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되 EV 개발비 절감이 필요했다. 특히 FCA가 르노의 전동화 기술을 공유해 EV 시장을 빠르게 확산시키면 최근 전동화 슬로건 아래 관련 제품을 쉴새 없이 쏟아내는 독일의 공세를 막아낼 것으로 본다. 게다가 디젤게이트를 겪으며 재빨리 전환해가는 독일의 EV 주도권 도전은 일찌감치 EV 부문을 주도했던 르노에게 위기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요소다.
[하이빔]독일차에 맞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동맹


물론 아직 확정된 사안은 아니지만 업계에선 두 회사의 합병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차피 르노와 FCA가 독립적으로 독일차의 공세를 막아내기도 버겁거니와 앞으로 투입될 미래형 자동차 개발 비용 또한 줄일 수 있어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두 회사가 미래를 전망하는 시각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먼저 FCA가 보유한 일부 프리미엄 브랜드를 제외하면 대부분 양 사의 주력 제품은 중소형차에 집중돼 있다. 시장에서 경쟁하고, 때로는 판매 현장에서 충돌도 불사하지만 미래적 관점에서 이들 중소형차는 앞으로 소유보다 ‘공유’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식했다는 뜻이다. ‘이동’이라는 본질적 기능 충족이 부각될수록 대중적인 중소형차 구매 가능성이 점차 낮아질 것으로 내다본 셈이다. 따라서 양 사의 합병은 공유경제의 영향으로 구매가 줄어들 대중 브랜드의 중소형차 위기를 사전에 줄이려는 시도로 읽힌다. 다시 말해 선제적으로 제품을 통합, 불필요한 낭비 요소를 걷어내자는 차원의 접근이기도 하다. 동시에 빠르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독일의 공세를 막아내 유럽 내 자동차산업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의도 또한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아화여대 미래사회공학부 박재용 연구교수는 "유럽 내 자동차산업에서 시간이 갈수록 독일의 지배력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이태리와 프랑스 모두에게 위협"이라며 "두 나라의 대표 자동차기업이 서로 손을 잡고 이런 상황을 대비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협상이 성사될 경우 FCA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에 오르게 된다. 양 사의 연간 생산 규모는 1,500만대를 넘고, 글로벌 모든 나라에 진출하는 시너지 효과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합병 후 거대한 덩치로 빠르게 변하는 시장의 대응 속도가 늦다면 후폭풍은 거셀 수밖에 없다. 지금의 자동차 시장은 이동 수단 제조를 넘어 이동하는 방식 변화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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