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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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는 하루 만에 온다. 음식을 새벽에 가져다 주는 곳도 있다. 짜장면, 치킨뿐만 아니라 동네 ‘맛집’ 음식까지 대부분 배달해 먹을 수 있다. 배달·배송 시장만 놓고 보면 한국 소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자 소비자는 더 편리해졌다.

이 같은 경쟁의 ‘촉진자’ 역할은 쿠팡이 했다. 쿠팡은 배송 택배와 관련된 영역 곳곳에서 기존 플레이어들과 부딪쳤다. 직접 택배 시스템을 구축해 택배회사와 부딪친 게 시작이었다. 이후 이마트처럼 정기배송을 했고, 마켓컬리처럼 새벽배송에 나섰다. 지금은 배달의민족 같은 음식 배달까지 하고 있다. 쿠팡이 벌인 ‘배달·배송 전쟁’은 시장을 키웠다. 그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쿠팡이 판을 흔들고 있는 이 시장의 규모는 약 10조원에 달한다.

1라운드=택배

“우리는 택배업을 하려는 게 아니다.”

쿠팡은 2014년 자체 배송 ‘로켓배송’을 시작했다. CJ대한통운 등 택배사들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언젠가 택배 사업을 할 잠재적 경쟁자로 봤다. 법원에 소송까지 내며 로켓배송을 막으려 했다. 이 소송은 쿠팡이 이겼다. 로켓배송은 쿠팡의 상징이 됐다.

몇 년 전 택배사들이 걱정한 것은 현실이 되고 있다. 쿠팡의 물류센터는 전국 40여 곳에 이른다. 배송 전담 직원(쿠팡맨)은 4000명을 넘었다. 파트타임으로 쿠팡 배송을 해주는 ‘쿠팡 플렉스’ 인원만 4000명 이상이다. 작년 택배 면허를 가진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까지 세웠다. 웬만한 택배회사의 배송 인프라를 능가한다.

유통업계에선 쿠팡이 조만간 ‘남의 물건’도 배송해 줄 것으로 보고 있다. 3자 물류사업을 할 것이란 얘기다. 지금은 자기 물건 처리하느라 바쁘지만 더 규모를 키워 진짜 택배회사가 될 것이란 예상이다. “아마존, 알리바바가 한국에 진출하면 쿠팡의 물류망을 쓸 것”이란 말도 나온다.

마침 택배 관련 ‘규제’도 풀렸다. 택배업에 한해 증차를 허용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최근 시행됐다. 그동안 택배사들이 줄곧 정부에 요구한 사안이다. 급격히 커지고 있는 온라인 배송 시장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2라운드=정기배송·생수배송

쿠팡은 2016년 국내 1위 대형마트 이마트와 가격전쟁을 했다. 생수, 기저귀, 물티슈 등을 경쟁적으로 싸게 판매했다. 유통거인과 벤처기업의 가격전쟁처럼 보였지만 내용은 정기배송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었다. 생활 필수품은 늘 필요한 제품이고, 한 번 구매하면 같은 곳에서 사게 된다. 승기를 잡으면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하는 정기배송 전쟁에 가까웠다.

이 싸움도 결국 쿠팡이 이겼다. 기저귀는 이마트를 누르고 쿠팡이 국내 유통사 중 가장 물량을 많이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잉파워’가 이마트를 능가했다. 물티슈, 생수 등의 품목도 쿠팡이 국내 최대 판매처가 됐다.

쿠팡은 현재 이런 생필품을 정기배송을 통해 더 많이 판매한다. 생수가 대표적이다. 식품 분야에서 쿠팡 내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은 이 회사의 자체상표(PB) ‘탐사수’다. 삼다수 아이시스 백산수 등 생수 상위 브랜드를 쿠팡 내에서 모두 제쳤다. 쿠팡이 이들 생수에 대한 정기배송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쿠팡은 자신들의 배송 강점을 최대한 유리하게 활용하고 있다.

배송은 국내 생수시장을 키워놓고 있다. 마트에서 물을 사서 들고오는 대신, 온라인으로 배송받는다. 작년 생수 시장 규모는 1조2542억원에 이른다.

3라운드=새벽 배송

쿠팡은 작년 10월 ‘새벽배송’을 시작했다. 마켓컬리 헬로네이처뿐 아니라 이마트 GS리테일 등 대기업까지 새벽배송에 나설 때였다. 쿠팡은 단숨에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쿠팡이 현재 처리하는 하루 새벽배송 주문건수는 약 3만 건. 기존 1위 마켓컬리를 제쳤다. 새벽배송의 품목 면에서는 경쟁자가 없다. 가정간편식(HMR), 신선식품, 가공식품 등 식품뿐 아니라 장난감, 학용품 등 약 200만 개 품목을 새벽에 보내준다. 쿠팡이 새벽배송 시장에서 영토를 확장하자 냉장, 냉동이 되는 지입차(운수회사 명의로 등록된 개인 소유 차량) 구하기 대란이 벌어질 정도로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업계에선 올해 국내 새벽배송 시장 규모가 작년(약 4000억원)의 두 배 이상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연내 1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분석도 있다.

4라운드=음식 배달

요즘 가장 뜨거운 배달 전쟁터는 음식부문이다. 가뜩이나 뜨거운 시장에 쿠팡까지 뛰어들었다. 쿠팡은 음식 배달 앱(응용프로그램) ‘쿠팡이츠’ 시범서비스를 지난 20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전인데 싸움이 붙었다. 상대는 이 시장 1위 배달의민족이다. 배달의민족 측은 “쿠팡이 배달의민족 매출 상위 식당 리스트를 불법적으로 확보해 접근한 뒤 기존 계약 해지를 부추겼다”고 주장하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쿠팡과 배달의민족이 맞붙은 지점은 동네 ‘맛집’ 배달 시장이다. 짜장면, 치킨 등 기존에 배달을 많이 하는 식당이 아니라 원래 배달을 하지 않는 곳들이다. 쿠팡은 이들 맛집을 상대로 ‘쿠팡이츠가 알아서 홍보하고 배달하고 팔아주겠다’고 끌어들이고 있다. 기존에 없던 배달 매출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20% 안팎의 수수료는 식당들이 지급해야 한다.

쿠팡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전쟁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쿠팡은 빠르게 물건을 가져다 주는 노하우가 있다. 쿠팡맨, 쿠팡플렉스는 스마트폰 전용 앱만 켜면 최적의 경로로 다니는 게 가능하다. 처음 배송하는 사람도 이 앱만 켜면 전문가가 된다. 이를 쿠팡이츠 라이더에 적용하면 시장 장악은 시간문제라는 게 전문가들 예상이다. 쿠팡의 배달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