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좀 있으면 어때, 반값인데
혼수도 '리퍼브 제품' 찾는 2030

불황·실속소비로 시장 급성장

매년 20%씩 크는 리퍼브 시장
이달 말 결혼을 앞둔 김지은 씨(34)는 최근 혼수를 준비하기 위해 백화점 대신 경기 파주의 한 리퍼브 전문매장을 찾았다. 함께 간 어머니는 리퍼브 제품을 중고 취급하며 마뜩잖아했다. 하지만 그는 침대부터 식탁 소파 TV 청소기 세탁기 등을 한꺼번에 구입했다. 총비용은 600만원. 그는 “백화점에서 샀다면 두 배는 더 줘야 했을 것”이라며 “대부분 새 제품이나 다름없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불황·가성비·온라인몰 바람…잘나가는 1兆 'B급 상품 시장'

불과 몇 년 전까지 일부 알뜰 구매층만 주목하던 ‘리퍼브(refurbished·재공급품)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기업들도 폐기 비용과 재고 부담을 덜 수 있는 시장으로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리퍼브는 유통 과정에서 살짝 흠집이 나거나 구매자의 단순 변심으로 반품한 제품이다. 사용한 적이 없는 만큼 중고품이 아니다. 가격은 정가의 40~60% 수준이다.

리퍼브 시장의 급성장은 불경기와 인터넷시장 팽창에 따른 변심 반품 급증, 실속 소비 트렌드 등 3박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매년 20%씩 성장하는 시장 규모는 이미 1조원을 넘어섰다는 게 업계 추정이다. 리퍼브 제품만 취급하는 오프라인 매장은 2017년 100여 개에서 최근 400여 개로 늘어났다. 리퍼브 취급 온라인몰도 1만여 개를 넘어섰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성장·취업난·고용불안을 겪으면서 동시에 ‘풍요의 시대’도 경험한 젊은 소비자들은 적게 쓰면서 큰 만족을 얻고 싶어 한다”며 “리퍼브 제품 선호 현상은 경기 침체와 더불어 합리적인 소비 관념이 확산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그래픽=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흠 있지만 반값" 리퍼브가 뜬다

불황·가성비·온라인몰 바람…잘나가는 1兆 'B급 상품 시장'

장기 불황 등의 영향으로 ‘폼생폼사’ 소비가 줄었다. 예비 신혼부부들조차 혼수 장만을 위해 ‘B급 상품’ 취급을 받던 리퍼브(refurbished·재공급품) 시장을 둘러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폭발적인 증가 추세의 온라인 쇼핑은 리퍼브 시장을 키우는 자양분이다. 소비자가 단순 변심으로 반품하는 과정에서 포장 훼손 등 이유로 ‘멀쩡한’ 상품들이 리퍼브 시장에 무한 공급된다. 가격메리트에다 제품 구색까지 갖춘 리퍼브 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똑똑한 소비자들은 특정 제품이 리퍼브 시장에 나올 때까지 몇 달간 기다림을 감수하고 제품을 구매할 정도”라며 “약 1조원 규모인 리퍼브 시장은 최근 매년 20%씩 급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20만원짜리 소파 99만원에

핀란디아 모니에 4인 식탁 세트

핀란디아 모니에 4인 식탁 세트

국내 1위 리퍼브 전문업체 올랜드아울렛은 지난해 17개 매장에서 약 7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보다 약 20% 늘어난 수치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각종 가전·가구 제품을 40~7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60만원에 팔리고 있는 다이슨dc74 청소기는 39만원에, 최근 ‘박나래 냉장고’로 유명해진 180만원대 코스텔 냉장고는 79만원에 판매 중이다.

삼성 65인치 UHD 커브드 TV는 43% 할인된 129만원, 49만원짜리 다이슨 선풍기는 45% 할인된 27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 223만원짜리 TN 전동리클라이너 4인 소파는 99만원 가격표가 붙었다.

아울렛 관계자는 “모두 백화점 전시 상품이나 유통과정에서 살짝 흠이 난 제품들로 신제품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가구와 생활용품 리퍼브 제품을 파는 SI퍼니처 역시 단일 매장에서 월평균 3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박상일 SI퍼니처 사장은 “결혼이나 이사를 앞둔 소비자들이 살림을 한꺼번에 장만하기 위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불황·가성비·온라인몰 바람…잘나가는 1兆 'B급 상품 시장'

옥션 G마켓 등 오픈마켓 업체의 ‘리퍼브관’ 매출도 늘어나는 추세다. G마켓 관계자는 “지난해 리퍼브중고전시상품관 매출은 2014년 대비 41% 늘어났다”며 “특히 노트북, 골프용품 수요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리퍼브 열풍에 중견기업들도 가세하고 있다. 지난해 말 까사미아는 신세계프리미엄아울렛 시흥점과 스타필드 고양점에 리퍼브 매장을 냈다. 안마의자업체 바디프랜드는 지난해 12월 압구정점을 도심형 아울렛 매장으로 리뉴얼하고 리퍼브 제품을 최대 40% 할인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온라인 시장과 동반 성장

리퍼브 시장의 성장세는 온라인 쇼핑 거래 급증과 맞물려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111조원을 넘어섰다. 전년보다 22.6% 증가하며 매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온라인 쇼핑액이 늘어날수록 자연히 반품 물량도 급증하고 있다. 신한카드 트렌드연구소에 따르면 2017년 1분기 신한카드 이용자(1033만 명) 중 18.5%(191만 명)는 온라인으로 제품을 산 뒤 반품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품 과정에서 제품에 상처가 생길 확률은 높아진다. 새 제품도, 중고도 아닌 이런 제품들이 리퍼브 시장으로 대거 흘러들어간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생겨난 합리적 소비 트렌드는 수요를 늘렸다.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이 성능은 정품과 똑같지만 가격은 저렴한 리퍼브 제품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조사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가 최근 벌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중 75%가 ‘B급 상품을 구매하는 건 똑똑한 소비활동’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올랜드아울렛 관계자는 “장기 불황이 본격화되면서 리퍼브 시장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며 “리퍼브 시장의 활황은 경기 불황의 거울”이라고 말했다.

다양해지는 조달창구

리퍼브 업체들은 어디서 물건을 조달할까. 제조업체들로부터 반품이나 전시 제품을 직매입하거나 도매업체·수입유통상으로부터 물건을 사들인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특히 도매업체나 수입유통상은 정품 박스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서 포장 박스만 찢어져도 리퍼브 시장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계절별로 전시 상품이 바뀔 때마다 제품을 쓸어오기도 하고, 폐업하는 소매점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매입하기도 한다. 물건을 확보하면 검수 과정을 거친다. 포장 박스만 훼손된 제품은 A급이다. 이런 제품의 할인율은 40% 안팎으로 높지 않다. 스크래치만 살짝 난 제품은 B급, 손잡이가 떨어지는 등 크게 훼손된 제품은 C급으로 분류해 정가의 70~80%까지 할인해 판매한다.

매장의 99%는 리퍼브 제품이지만 새 제품에 가까운 중고 제품을 팔기도 한다. 올랜드아울렛은 지난해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선수촌에서 선수들이 썼던 침대, 세탁기, 노트북 등 30억원어치를 평창 조직위원회로부터 한꺼번에 매입해 팔았다. 대개 3~15일 내외로 사용된 제품이다. 올랜드아울렛 관계자는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를 합해 19만원에 판매하는 등 가격이 싸 인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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