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금융회사들이 당초 예정된 차세대 전산시스템 전환 일정을 연기하거나 단계적 전환을 추진하는 등 도입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 차세대 전산시스템 도입이 필수적이지만 전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전산 사고를 최소화하겠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에서 잇단 전산장애로 소비자 불편을 초래한 우리은행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교체하다 먹통될라"…금융사, 시스템 도입 '신중'
시스템 도입 늦추는 금융사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오는 9월 추석 연휴를 기해 차세대 전산시스템인 V3를 가동할 계획이다. 차세대 전산시스템은 금융사가 신규 도입하는 전산장비 및 운영체제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등을 뜻한다. 2500억원이 투입된 교보생명의 새 시스템은 당초 지난해 11월 가동할 예정이었지만 10개월가량 늦어졌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확실하게 안정성을 확보한 뒤 시스템을 오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화생명도 다음달부터 차세대 전산시스템 구축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가동 시기는 2021년 말에서 2022년 상반기로 늦춰졌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전산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중간 테스트를 하는 등 신중하게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도 올초부터 3000억원이 투입된 차세대 전산시스템 도입 계획인 ‘더 K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특정 시점에 시스템 전환을 일제히 완료하는 이른바 ‘빅뱅’ 방식 대신 분야별로 시스템 오픈 일정이 다른 단계적 전환 방식을 선택했다. 국민은행은 내년 초부터 추석 연휴 때까지 단계적으로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은행의 전산시스템 도입 과정에서 발생한 잇단 전산 장애를 교훈 삼아 금융사들이 시스템 도입을 늦추는 등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5월 3000억원을 들인 차세대 전산시스템 ‘위니(WINI)’를 가동했다. 첫 가동일부터 모바일뱅킹 접속 오류가 발생했다. 같은 해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또다시 전산장애가 발생하면서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리스크 관리 나선 금융당국

국내에선 1990년대 초반부터 금융업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전산시스템이 구축됐다. 인터넷·모바일뱅킹 등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기존 시스템의 용량이 부족해지고 처리 속도가 늦어지자 금융사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차세대 전산시스템을 도입했다. 통상 전산시스템 전환 주기는 15년이다. 금융사들이 지난해부터 일제히 차세대 전산시스템 도입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은행 사례처럼 전산시스템 도입 과정에서 전산장애가 발생하며 금융서비스가 불안해지고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에 제기된 민원 2822건 중 43.1%에 달하는 1215건이 우리은행에 몰렸다. 잇단 전산장애로 소비자 민원이 폭증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민원이 급증하면 금융당국의 종합검사나 부문검사 대상이 될 수 있어 시스템 도입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금융사의 시스템 전환 리스크를 들여다보기 위해 정보기술(IT) 분야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을 맞아 차세대 전산시스템이 금융사들의 가장 큰 리스크로 부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