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마침내 3만5000달러(약 3930만원)짜리 보급형 세단 '모델3'를 내놨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3년 전 소비자에게 약속했던 소비자 가격이다.

2017년 첫 출시 당시 모델3 가격은 4만9000달러였다. 2년여 만에 30%가량 저렴해졌다. '모델S'와 '모델X'도 최대 1만8000달러가량 낮아질 전망이다. 다만 '온라인 구매'란 조건이 붙었다. 비용 상승을 부추기는 거래 구조를 손봐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머스크는 "3년 전 고객과 약속한 대로 모델3 스탠더드형을 3만5000달러에 팔겠다"면서 "오프라인 매장이 아닌 온라인(인터넷·모바일)에서 판매할 것"이라고 했다. 비용을 아껴 차값을 낮췄다는 설명인데 전체적으로 평균 약 5~6% 저렴해진다고 덧붙여 강조했다.

테슬라는 100년간 이어진 제 3자 딜러십 체제에 반기를 들고 자체적으로 매장 378곳(서비스센터 포함)을 운영해왔다. 이들 매장까지 없앤다는 게 머스크의 결정이다. '쇼룸' 형태로 일부 매장만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비싼 거래 구조를 띠는 영업(매장·딜러)분야까지 수술대에 올린 테슬라의 발표에 자동차 시장은 술렁이고 있다. 테슬라는 흔히 차(車)업계의 '애플'로 불린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애플이 노키아를 제치고 세상을 바꾼 것처럼 머스크와 테슬라가 낡은 규칙을 깨부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월가(Wall Street)의 반응은 머스크의 기대와 달리 차갑기만 하다. 가격을 낮춘 탓에 수익을 올릴 수 없을 것으로 우려해서다.

테슬라(종목명 TSLA)의 주가는 머스크의 발표 이후 곤두박질쳤다. 지난 1일 개장과 동시에 4%가량 떨어지더니 장중 한때 8.75%까지 미끄러졌다. 종가는 전날보다 7.84% 급락한 주당 294.79달러. 시간외 거래에서도 소폭 더 하락(-0.25%)했다.

월가는 머스크의 발언을 두고 "올 1분기(1~3월)에 수익이 없고, 다시 분기 적자로 돌아설 것이란 이야기"라고 입을 모았다.
월가의 비판들 / CNBC 화면 캡처
월가의 비판들 / CNBC 화면 캡처
모건스탠리의 애널리스트(기업분석가) 아담 조나스(Adam Jonas)는 "1분기 판매량 부진을 안정화시킬 수 있겠지만, 영업마진 등 독보적인 브랜드로서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 향후 주가에 호재보다 악재가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골드만 삭스도 "이번 발표가 소비자 수요엔 긍정적일 수 있지만, EV(순수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이 줄어드는 상황이라서 실적에 부담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아이폰처럼 '모델3'를 무기로 차세대 애플의 길을 걸어야 하는데 오히려 가격을 더 낮추고 모든 스토어의 문을 닫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번스타인의 경우 "머스크의 발표가 '힘 있는' 입장에서 이뤄진 것 같지 않다"면서 "3만5000달러짜리 모델3의 총 마진은 '0%' 수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다만 "제조 비용을 계속 줄인다면 마진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판단했다.

월가는 머스크와 테슬라가 곳간을 채울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가격 인하 조치로 더욱 자금난에 시달릴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는 지난주 9억2000만달러에 달하는 전환사채(CB)를 전부 현금으로 갚았다. CB 발행 당시보다 주가가 낮은 상태라서 채권자들이 CB를 주식으로 바꾸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테슬라의 보유현금(지급준비금)은 36억9000만달러. 3개월 만에 4분의 1가량이 줄어 27억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테슬라는 이제 CB를 더 발행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면 이전 조건보다 더 많은 금리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곳간이 비어도 다시 채우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모델3' 테슬라 홈페이지 캡처
'모델3' 테슬라 홈페이지 캡처
그래도 대담했다. 머스크는 "온라인 판매로 거래 구조를 바꾸고, 인원 감축 등을 통해 제조비용을 줄여나갈 것"이라면서 "1분기엔 흑자를 기록하지 못할 것"이라고 투자자에게 실토했다. 그러면서 "3년 전 약속한 가격의 모델3는 주문 시 2~4주 안에 인도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2003년 캘리포니아주의 팰로앤토에 테슬라를 설립한 머스크는 15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전기 모빌리티를 선도하는 주자로 나섰다. 이제껏 적자를 낸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반복된 '생산 지연'. 머스크가 더 빨리 소비자와의 약속(인도 기간)을 지키고, 수요 대응에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테슬라의 '한판 뒤집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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