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통상임금 소송에서 이른바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위반 여부를 관대하게 적용하면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4일 재계 고위 관계자는 "기업의 신의칙이 부정된 게 기업 현실 등을 고려하지 않아 당혹스럽다. 기업별·법원별로 신의칙 적용 여부가 달라진다면 예측하지 못한 엄청난 부담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조원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창출팀장은 "(대법원의 파기환송은) 추가 임금을 지급하라고 한 것으로, 신의성실원칙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근로자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재계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앞서 재계에서는 이번 판결에서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에 대한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준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했다. 회사의 경영상황 판단과 관련해 통일된 재무지표를 기준으로 당기순이익이나 이익잉여금 등에 기초한 어느 정도의 합의된 원칙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도 새로운 법리나 판단 기준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원고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실망감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신의칙 적용 요건에 있어 주관적 판단의 개입 여지가 충분하고, 어느 정도의 부담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인지 판단 여부가 여전히 모호한 채 남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14일 인천 시영운수 소속 버스기사 2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직원들은 2013년 3월 회사를 상대로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하고, 그에 따라 재산정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법정수당을 지급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회사의 신의칙 위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패소 판결했다. 노사 합의 당시 상호 이해하던 것과 다른 법리를 들어 재산정된 통상임금을 토대로 추가 법정수당을 요구하는 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해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춰 용인될 수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했다. 추가로 법정수당을 지급한다고 해서 회사 경영에 중대한 어려움이 생기거나 회사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지적했다.

재판부는 "신의칙을 근로관계 강행규정보다 우선해 적용할지 판단할 때는 근로기준법 등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해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고 향상시키려는 취지를 살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기업 경영 상황은 내·외부 여러 사정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다"면서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초래나 기업 존립 위태를 이유로 배척하면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며 신의칙 위반 여부를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