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커피피플] (5·끝) '커피프린스'에 반한 20세 소년, 10년 뒤 '세계 챔피언' 됐다
‘스타벅스를 무릎 꿇린 나라.’ 호주의 커피 문화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50년대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호주에 에스프레소를 퍼뜨렸다. 1970년대 예술가들은 멜버른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호주식 커피인 플랫화이트와 롱블랙은 이제 세계 주요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글로벌 커피 메뉴가 됐다. 카페라떼와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형태지만 맛은 전혀 다른 맛을 낸다. 이유는 생두에 있다. 멜버른 항구에는 매일 300만 명이 마실 수 있는 생두가 들어온다. 도시에는 수백 개 카페와 로스터리가 각각의 개성으로 공존한다. 스페셜티 커피 문화도 10여년 전 시작됐다.

이런 ‘커피강국’에서 4~5년 전부터 한국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호주 국가대표 커피 챔피언은 수년 째 한국인이 차지하고 있고, 이름난 카페와 로스터리에서 한국 청년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자신의 브랜드를 창업한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멜버른과 시드니에서 한국인 바리스타와 로스터들을 인터뷰했다.

⑤호주 최초, 한국인 최초 2018 커피 컵테이스터스 부문 ‘세계 챔피언’ 야마 김
‘커피 프린스 1호점.’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일찍이 국내에 알린 드라마다. 2007년 이 드라마를 본 뒤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도 꽤 많다. ‘호주 최초, 한국인 최초’로 지난해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WBC) 컵테이스터스 부문에서 우승한 야마 김(본명 김진우·31)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고교 3학년 때 드라마 커피프린스에 빠졌다. 김 씨는 “드라마를 보며 커피를 만드는 직업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곧장 커피를 배울 수 있는 학원을 찾아갔다. 카페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2009년 경기도 구리 ‘오후세시’라는 작은 로스터리 카페에 취직했다.

“첫 시작을 좋은 곳에서 했어요. 많은 것을 배웠고, 바리스타에서 로스터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때 큐그레이더(원두 감별사)등의 자격증도 땄고요.”
바리스타 겸 로스터 경력 5년차. 늘 보던 커피 전문 잡지에는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활동하는 한국인 바리스타의 글이 연재되고 있었다. 한국과 커피를 대하는 문화가 다르고, 시장이 큰 호주에 호기심이 생겼다. 자신감도 있었다. 결정은 빨랐다. “나도 가보자.”
9년이 지난 지금, 야마 김은 현재 시드니에서 가장 바쁜 카페 중 하나 ‘킹스우드커피’의 바리스타 겸 로스터, 생두 바이어로 살고 있다. 바리스타 두 명이 하루 1000~1200잔 정도의 커피를 만든다. 일을 마친 오후 네 시 이후엔 일반인과 바리스타를 대상으로 커피 교육도 한다. 1주일에 한 번은 원두를 로스팅한다. 2017년 처음 참가한 호주 커피 컵테이스터스 부문
국가대표 선발전과 2018년 같은 대회에서 모두 1위를 했다. (호주 국가대표 선발전은 4개 지역 예선을 거쳐 올라온 바리스타들이 경연을 벌어 최종 우승자를 선발한다.)
지난해 11월에는 호주 국가대표로 브라질 벨로리존테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WBC)에 참가해 컵테이스터스 부문 1등을 했다. 여러 경쟁 부문 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는 컵테이스터스 부문에서 호주 국가대표로도 최초, 한국인으로서도 최초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컵테이스터스 부문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정확하게 커피 품종 등을 맞히는 대회다. 야마 김은 호주에서도 스타가 됐다. 그는 “한국에서 커피를 시작했을 때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게 지금의 나를 만든 결정적 요소가 됐다”고 했다. 그는 또 “동양인, 특히 한국인의 미각 ‘팔레트’는 서양은 물론 동양의 다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아주 탁월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컵테이스터스 부문 호주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한국인이 1위를 차지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가 호주에 온 건 2011년. 호주에서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1년간은 청소회사에서 청소를 했다. “기술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바리스타의 일이라는 건 단지 기술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며 “언의 장벽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실패한 채 한국에 돌아가는 건 부끄러웠다. 버텼다. 2013년 시드니 캄포커피에 취직했고, 이후 ‘더블로스터스’ 플래그십스토어에서 헤드 바리스타 겸 파트타임 로스터가 됐다. 2015년부터 킹스우드로 자리를 옮겨 로스터 겸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바리스타인 김씨의 전공은 와인. 와인을 공부했던 경력은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고 그는 말했다. “와인에서 쓰는 용어와 커피에서 쓰이는 용어가 비슷하고, 생산 과정도 닮은 점이 정말 많았어요.” 토양과 기후 등 산지의 환경에 따라 그 해의 결과물이 영향을 받는다는 측면에서도 닮았다. 그는 “알코올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와 와인이 좀 더 학문적인 토대가 되어 있다는 것을 빼면 커피와 와인은 아주 유사한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민 끝에 시드니를 정착지로 택했다. 호주의 커피 중심지는 멜버른이라고 한다. “멜버른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틈에 끼는 것보다 시드니에서 새로운 문화를 개척하고 자리 잡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실제로 시드니는 커피 시장에선 블루오션이었어요.” 당시 시드니엔 스페셜티 카페가 많지 않았다. 그는 “시드니가 늘 멜버른의 커피 문화를 쫓아왔기 때문에 멜버른에 있는 건 시드니에 있지만, 오히려 시드니에 있는 건 멜버른엔 없다”고 설명했다. 독립 카페 로스터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유 로스터리가 대표적이다.

김 씨는 한국에 수시로 다녀온다. 여러 커피 회사를 돌아보고, 동료들과 함께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브루잉 팝업 스토어, 커피 세미나 등을 연다. 그는 “호주에서 이룬 게 많지만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국적을 포기할 생각도 없어서 장기적으로 한국에서 커피 교육 사업도 해보고 싶다”며 “한국의 커피문화와 소통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커피 문화는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습니다. 스페셜티 커피, 로스팅 문화도 일찍부터 발달했지요. 다만 언어와 커뮤니케이션 스킬 때문에 아직 인정받지 못하는 부문이 많았어요. 일본이 독자적인 커피 문화를 발전시킨 것처럼, 호주식 커피 문화의 장점을 한국과 접목해 더 발전된 한국의 독보적인 커피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시드니=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사진=프리랜서 육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