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표 악화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마트 등 유통업체들이 설 대목을 맞아 준비한 선물세트 매출은 지난해보다 1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등 법인의 대량 구매가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개정되면서 공직자 등에 대한 농·수·축산물 선물 한도가 종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된 효과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영란法 완화 이제야 효과?…기업 설 선물 주문 크게 늘었다
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의 지난달 설 선물 매출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8%에 달했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도 관련 매출이 각각 11.5%, 6.8% 증가했다. 현대는 1월 4일부터, 롯데와 신세계는 각각 1월 11일과 19일부터 집계한 결과다. e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들도 비슷하다. 이베이코리아가 운영 중인 G마켓에선 지난달 22~28일 설 선물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10% 늘었다. 옥션에서도 11%의 매출 증가율을 보였다.

농·축·수산물 수요가 급증했다. 현대백화점에서 한우를 비롯한 정육 선물세트 매출은 19.3%, 청과는 14.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에서도 청과(15.2%)와 축산(10.5%) 판매 증가율이 10%를 넘었다. 11번가에선 축산물과 수산물 매출이 지난달 20~30%가량 급증했다.

경기 하강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도 설 ‘선물 경기’가 호조를 보이는 주된 배경은 ‘김영란법 완화 효과’와 기업들의 단체 주문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스마트폰 등 작년 한 해 수출을 주도한 대기업들이 특히 그렇다.

이마트의 경우 국내 제조 공장이 밀집한 지역인 인천 연수점, 경기 안산 고잔점 등 20여 곳의 ‘공단 인접 매장’에서 선물 매출이 급증했다. 작년 12월 13일부터 올 1월 30일까지 이들 매장의 설 선물 매출 증가율은 20~30%에 달한다. 경기 평택점은 이 수치가 32%에 이르렀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한 쌍용자동차 등 평택에 있는 기업들이 대량으로 선물세트를 구입한 영향이 컸다. 이마트 전체 설 선물 매출 증가율(9.4%)을 크게 앞섰다.

이마트 관계자는 “올해 설 선물 매출 증가는 법인 고객이 견인하고 있다”며 “법인이 많이 이용하는 사전예약 판매 기간에는 매출 증가율이 40~50%에 달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선 작년 초 시행된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령 개정도 한몫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공직자 등에 대한 선물 한도가 농·축·수산물에 한해 기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높아진 것이 선물세트의 단가를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에선 5만~10만원대 상품군이 가장 큰 폭 성장했다. 이 가격대 상품의 매출 증가율이 20%를 넘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 설은 법 시행 이후 첫 명절이어서 혼란이 다소 있었다”며 “작년 추석 명절부터 선물 수요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법군 11번가 신선식품 팀장은 “수입육 세트와 육포세트 등의 판매가 호조를 보여 수입육과 축산 가공품도 30%대의 성장률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자영업자 및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와 맞물려 설 선물시장에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100만원이 넘는 초고가 선물세트는 올해 특히 잘 팔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에서 판매하는 135만원짜리 ‘L-NO9 한우세트’는 이미 80% 이상 소진됐다.

반면 온라인쇼핑에선 저가 상품 선호가 더 강하다. 티몬은 3만원 이하 선물의 매출 비중이 44%로, 작년 설보다 11%포인트 상승했다. 1만원 이하 비중은 13%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법인에 비해 가격에 훨씬 민감한 개인은 저가 상품을 더 많이 찾았다는 얘기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