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에서 SK하이닉스 노조는 ‘착한 노조’로 통한다. 실적과 무관하게 임금을 올려달라고 ‘생떼’를 쓰는 여느 노조와는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SK하이닉스 노조는 ‘회사가 살아야 조합원도 산다’는 생각에 1987년 창립 후 단 한 번도 파업하지 않았다. 2001년 유동성 위기로 신음할 때는 임금 유예, 각종 복지제도 폐지에 합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전 직원 대상 순환 무급휴직 시행, 휴일 및 시간외 근무수당 반납 등도 달게 받아들였다.

이랬던 SK하이닉스 노조가 사상 최대 규모 성과급(월 기본급의 1700%) 지급 계획 등을 뼈대로 한 임금 및 단체협상 안건을 28일 거부하자 회사 측은 물론 산업계 전체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재계에선 강경 노선으로 갈아탄 SK하이닉스 노조의 ‘변신’이 산업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보다 성과급 더 달라" 강성으로 돌변한 SK하이닉스 노조
임단협 사상 처음 부결

SK하이닉스 노조는 임단협 안을 부결시키며 “성과급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유를 달았다. 회사 측은 노조와의 교섭에서 △연간 이익분배금(PS) 1000% △특별기여금 500% △생산성 격려금(PI) 상·하반기 각 100% 등 1700%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성과급(1600%)을 웃도는 사상 최대 규모다. 이렇게 되면 연봉 6000만원을 받는 1년차 책임(과장)은 연봉의 85%인 5100만원을 보너스로 받게 된다.

SK하이닉스가 성과급을 이렇게 책정한 건 메모리 반도체 업계 1위인 삼성전자와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다. 삼성전자 DS(반도체·부품) 사업부 임직원이 지난해 성과를 토대로 이미 받았거나 앞으로 받을 성과급 합계와 똑같은 수준이 ‘월 기본급의 1700%’라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업계 2위인 SK하이닉스는 1위인 삼성전자의 지급액을 감안해 성과급을 책정해왔다”며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삼성 DS부문에 못 미치는 실적을 냈는데도 똑같은 규모의 성과급을 주기로 한 건 임직원을 배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의 생각은 다르다. 지난해 영업이익(20조8438억원)이 2017년(13조7213억원)보다 52%나 늘어난 만큼 성과급도 최소한 이 비율로 올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SK하이닉스 노조는 지난해부터 “영업이익의 10%(약 2조원)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노조원에게 ‘월 기본급의 1700%’를 지급할 때 소요되는 비용이 1조원을 소폭 넘는 수준인 만큼 지금보다 2배 가까이 늘려달라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 노조의 주장은 결국 업계 1위이자 생산성도 더 뛰어난 삼성전자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해달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올해 영업이익 급락 가능성

SK하이닉스 경영진은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4분기를 기점으로 반도체 업황이 꺾인 마당에 어떻게 ‘돈잔치’를 벌일 수 있느냐는 하소연이다. SK하이닉스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4조4301억원)은 3분기(6조4724억원)보다 31.6%나 줄었다.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동반 하락하면서 올 1분기 영업이익은 1조원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장비 투자를 40% 줄이기로 하는 등 ‘투자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예년 같으면 노사가 합심해 위기 극복에 나서겠지만 올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작년 말 SK하이닉스에 새로 설립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기술·사무직 노조가 올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기 때문이다. 기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생산직 노조가 맡고 있는 ‘교섭 대표’ 지위 기간이 오는 4월 종료되면 두 노조는 ‘대표 노조’ 자리를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이게 된다.

일각에서는 온건했던 현 생산직 노조가 이번 임단협 과정에서 사측과 각을 세운 것도 향후 기술·사무직 노조와의 교섭 대표 경쟁을 앞두고 노조원들의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온건 노조라도 민주노총 산하 강성 노조와 경쟁하기 위해선 조합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임금 인상, 복지 확대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며 “SK하이닉스의 노사불이(勞使不二:노사는 둘이 아니다)’ 전통이 무너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오상헌/고재연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