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28차례나 회의를 열고 한국전력, 원곡면(경기 안성) 주민들과 중재안을 논의했지만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어요. 더 이상의 논의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안성~고덕 송전선로 건립과 관련해 갈등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준건 한국갈등관리연구원(사단법인)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말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17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 내내 “안타깝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 계획이 일부 지역 주민 등의 반발에 밀려 자칫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에서다.

이 위원은 “삼성전자가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 수십조원의 투자를 결정한 만큼 계획대로 되면 국가 전체적으로 상당한 경기부양 및 고용유발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대승적인 차원에서 모두 발 벗고 나서 삼성을 도와줘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발목을 잡는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송전탑 건립이 5년째 표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조기에 갈등을 해결할 협의체를 꾸리지 않은 점을 꼽았다. 한전과 주민들은 송전탑 건립 계획이 발표된 지 4년 가까이 지난 작년 1월에야 갈등조정위원회(한전 직원 4명, 원곡면 주민 4명)를 구성했다. 이 위원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양측이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한발씩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며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가 중재자가 돼 대승적인 차원에서 타협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재연/오상헌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