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오른쪽)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 태스크포스 최종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종구 금융위원장(오른쪽)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 태스크포스 최종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2008년 미소금융을 도입한 뒤 10년 만에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에 나선 건 제도권에서 외면받는 서민·취약계층을 지원한다는 당초 취지가 퇴색됐다는 판단에서다. 더욱이 그동안 정치적 고려 등에 따라 지원 대상 범위를 대폭 넓히고 대출금리를 낮추면서 서민금융 재원은 고갈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부는 예산 투입 대신 금융회사 출연금 규모와 고객 휴면예금 활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금융사 서민금융 재원 더 내라”

금융위원회는 21일 안정적인 서민금융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 상시출연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서민금융상품은 2008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37조5300억원이 공급됐지만 정부 예산은 단 한 번도 투입되지 않았다. 고객 휴면예금 및 기부금, 금융사 출연금 등이 한시 재원으로 쓰였다.

문제는 매년 1750억원이 출연되는 복권기금은 2020년, 금융사 출연금은 2024년 종료되면서 재원이 바닥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내년부터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신용자를 위한 ‘긴급 생계·대환 상품’(가칭)이 출시되면서 1조원가량의 재원이 더 필요해졌다.

최준우 금융위 금융소비자국장은 “지속가능한 서민금융 지원을 위해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바탕으로 출연제도를 법제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내년 초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 예산 한푼 안들이고 금융사에 '年 3000억 서민금융 출연' 강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는 연간 3000억원가량의 출연금을 부담해야 한다. 지금은 햇살론을 취급하는 상호금융과 저축은행만 연간 1000억원을 출연 중이다. 출연금은 금융사 가계신용대출 규모에 비례해 부과하기로 했다. 가계신용대출 규모가 큰 은행권 부담이 커진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서민금융 재원으로 출연 중인 금융권 휴면자산 대상 범위도 확대하기로 했다. 우선 휴면예금 출연기관을 현행 은행과 저축은행에서 상호금융으로 확대했다. 또 금융권의 5년 이상~10년 미만 미거래 자산 운용수익은 서민금융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금융위의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소멸시효(10년)가 지난 휴면예금 등 미거래 자산만 서민금융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다만 5~10년 미거래 자산의 운용수익은 금융사가 가져갔는데 내년부터 이 수익도 서민금융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각 재원에 따라 서민금융상품별로 분리 운영되는 ‘칸막이’ 방식을 없애고 일괄 통합하기로 했다.

서민금융 예산 삭감한 국회

당초 금융위는 지난달 말까지만 하더라도 안정적인 서민금융상품 공급을 위해선 자체 예산 마련이 필수라고 봤다. 서민금융 지원체계를 바꾸기 위해 지난 6월 출범한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는 10월 금융위에 제출한 최종 보고서를 통해 서민금융 예산 확보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금융위도 TF의 지적을 받아들여 미소금융·햇살론·새희망홀씨·바꿔드림론 등 내년도 4대 정책 서민금융상품을 공급하기 위해 2200억원가량의 예산안을 지난달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원회를 거치면서 당초 예산안 대비 1000억원이 삭감된 데 이어 이달 초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선 전액 삭감됐다는 것이 금융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금융위는 내년에도 자체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국회 및 예산당국과 충분한 협의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서민금융 재원을 예산으로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치권보다 예산당국을 설득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금융위가 당초 계획에 없던 ‘금융사 상시출연제도’ 법제화를 들고 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TF에 참여한 한 위원은 “저소득층으로 지원 대상을 전환한 이번 서민금융체계 개편 방향에 크게 공감한다”면서도 “정부 예산 한푼 투입하지 않고 금융사 출연금으로 공급을 늘린 건 매우 아쉽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