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3일 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부터 사인볼을 전달받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3일 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부터 사인볼을 전달받고 있다.
지난 7일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반텐주 실레곤에서는 롯데케미칼이 4조원을 투자해 건설할 유화단지 부지 조성식이 열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롯데 경영진과 아이르랑가 하르타르토 인도네시아 산업부 장관 등이 착공을 알리는 버튼을 함께 눌렀다.

당초 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던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신 회장을 대통령궁으로 초청했다. 신 회장은 행사 직후 자카르타로 이동해 조코위 대통령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유화단지 사업을 설명하고 “롯데와 인도네시아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네시아 유화단지 사업은 신 회장이 구속수감된 기간 동안 차질을 빚은 대표적인 대형 프로젝트다. 롯데 관계자는 “(이번 방문을 통해) 현지의 의구심을 일소하고,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 놓았다”고 말했다.

해외 매출 중 동남아 비중 60% 육박

중국 시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동남아시아 시장을 확대하려는 롯데의 신(新)남방전략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0월 경영에 복귀한 신 회장이 사실상의 첫 비즈니스 출장국으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선택한 배경이다.

신 회장은 지난 3~7일 출장에서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 하노이와 호찌민의 인민위원장(시장), 조코위 대통령, 딴중 CT그룹 회장, 안토니 살림 살림그룹 회장 등 두 나라 정·재계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고위 인사들과의 관계가 신규 사업 추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동남아에서 제2의 롯데를 건설하겠다’는 신 회장 구상이 이번 출장을 통해 탄력을 받게 됐다는 게 롯데 안팎의 평가다.

인도네시아에 유화단지…베트남에 복합단지, 신동빈의 新남방전략 탄력 받았다
동남아는 이미 롯데그룹 제1의 해외 사업 지역으로 부상했다. 롯데의 지난해 해외 매출 10조7000억원 가운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4개국 매출은 7조원으로 57%에 달했다. 중국(13%) 미국(9%) 유럽(7%) 등과 큰 격차가 난다. 특히 중국 비중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이후 롯데마트 등이 철수한 영향으로 2016년 25%에서 13%로 크게 축소됐다.

화학이 주도…스타트업에도 투자

롯데는 1990년대 초부터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다. 지금까지는 소비시장을 공략하는 데 주력했다.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리아 롯데제과 등이 현지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최근엔 화학·복합단지·호텔레저·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화학 부문이 가장 공격적이다. 인도네시아에 유화단지를 건립하는 사업의 주체인 ‘롯데케미칼타이탄’은 생산능력 확충을 위해 기존 공장이 있는 실레곤의 국영 철강회사 ‘크라카타우 스틸’ 부지를 2016년 매입했다. 나프타분해시설(NCC) 등 고도화 석유화학 설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롯데는 2010년 1조5000억원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사업장을 갖고 있는 화학 회사인 타이탄을 인수했다.

롯데 관계자는 “4조원을 투자해 47만㎡ 부지에 에틸렌을 연 100만t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건설할 계획”이라며 “공장이 완공되면 석유화학제품 원료인 폴리에틸렌, 에틸렌 등을 수입하지 않고 바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복합단지는 베트남의 양대 도시인 호찌민과 하노이에 짓는다. 호찌민에선 투띠엠 지구에 약 2조원을 투자해 아파트 오피스 호텔 쇼핑몰 시네마 등을 짓는 복합단지 사업인 ‘에코스마트시티’ 착공을 앞두고 있다. 롯데는 첨단 기술과 친환경 시스템을 접목해 2014년 완공한 ‘롯데센터하노이’에 버금가는 랜드마크로 건립할 계획이다. 하노이에도 비슷한 콘셉트의 복합단지인 ‘롯데몰하노이’를 추진하고 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