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교육훈련 프로그램 도입…중·장년 근로자 재취업 도와라"
청년 일자리 문제가 너무 심각해 고용불안은 상대적으로 외면받고 있다. 경기 침체와 고령화가 공존하는 현실에서 중·장년층의 숙련된 노동력의 미스 매치와 사장(死藏)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우리 사회는 과연 이들의 경험치를 최적의 경제활동지로 연결시키기 위해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다. 먼저 기업 내부에서 작게라도 일종의 ‘이·전직 교육훈련 프로그램’ 도입을 통해 이들이 더 늦기 전에 회사 안팎에서 제2의 커리어를 새롭게 실현해 볼 수 있는 훈련을 도와줘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의견을 조심스레 피력해본다.

사회적 이슈이기도 한 고용불안 문제를 무작정 기업에 떠넘기자는 말이 아니다. 기업에서 먼저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제2의 커리어를 미리 훈련시키는 문화가 형성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이 하고 있는 전직 지원 프로그램은 완성도나 적시성으로 볼 때 분명 역부족이다.

기업 현장은 이런 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는 곳이다. 더욱이 한국 기업은 정기적으로 직무 순환이 이뤄지고 있으며 여전히 다양한 교육훈련을 하고 있다. 이·전직이라는 개념이 이미 뿌리를 내린 서구 사회에서는 산업 변화의 가속화와 더불어 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재훈련하고 있다. 유수의 다국적 기업에서 임직원 세미나 시간에 개인의 커리어 브랜드를 만들고 그 가치를 높이는 방법에 대해 강의하고 논의하는 것이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기업의 인력 육성 접근법에도 변혁이 요구된다. 화이트칼라의 경우에는 그토록 오랜 시간 직장에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하는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퇴직 후 임시직, 일용직, 생계형 자영업, 단순 노무직종으로 몰리는 현상을 계속 보이고 있다. 인재에 대한 지속적이고 균형적 투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교육훈련으로 모호하게 연차만 쌓여가는 색깔 없는 근로자 그룹을 지나치게 많이 양산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느낌으로는 서로 ‘잘못된 만남’임을 알면서도 상호간의 어색하고 불만족스러운 동거를 계속해 나가다가 한참 후에서야 명예퇴직과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에 큰 아픔과 상처를 겪고 만다. 사내 ‘이·전직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도입은 이런 누적되는 고민을 풀어갈 수 있는 완충작용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넘어야 할 현실적인 난제도 예상된다. 근로자의 인식전환은 넘어야 할 큰 장애물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재발견해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기보다는 ‘가늘게’라도 무작정 버텨보려는 성향이 아직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인식 변화와 자기 커리어 정체성 재정립을 더 이상 회피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닐 것이다. 비용 문제는 선택과 집중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콘텐츠와 훈련 방법은 얼마든지 스마트하고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다.

숙련된 노동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나 개인 모두에게 낭비다. 그렇기에 이들을 현재 모습으로 방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원론적으로는 기업, 사회, 그리고 정부 그 누구도 한 개인의 커리어와 인생에 도의적, 법적 책임은 없다. 하지만 조금만 관점을 바꾼다면 중·장년 근로자에 대한 제2의 커리어 구축 지원은 기업의 인재 육성 효율성을 높이고 개인에게도 평판 관리와 이미지 제고를 할 방법이 된다. 사회적으로도 전체 노동력의 선순환을 촉진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 100세까지 사는 초고령화 시대, 사오정, 오륙도를 지나서도 우리는 오랫동안 먼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준기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