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은 빅데이터산업 활성화를 위해 가명정보를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일찌감치 관련법을 개정하는 등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2014년 초 발생한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트라우마’에만 사로잡혀 규제 완화 논의를 중단한 한국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카드사 트라우마'에 갇혀 빅데이터 경쟁서 뒤처진 한국
빅데이터산업 활성화를 위해 가명정보 활용을 장려하는 대표적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한국처럼 모든 분야를 통틀어 정보 보호 원칙을 명시한 개인정보보호법을 두지 않고 있다. 대신 개별 법률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함께 활용 방안도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 의료정보보호법은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식별 요소가 제거된 데이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가명정보에 대해선 민간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자유로운 활용이 가능하다. 미국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올초 발표한 세계 빅데이터 활용·분석 순위에서 카타르와 이스라엘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63개국 중 31위에 머물렀다. 다만 미국은 개인 식별이 가능한 정보를 유통하거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했다고 판단되면 엄격한 사후제재를 받는다.

일본은 2003년 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을 2015년 9월 개정해 빅데이터 활용을 촉진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익명가공 정보화’라는 개념을 도입해 당사자 동의 없이도 제3자에게 비식별정보를 제공하도록 한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EU는 전통적으로 개인정보 보호 규제 수준이 다른 국가보다 강하다. 하지만 EU는 2015년 회원국 간의 단일법으로 일반정보보호규정(GDPR)을 제정한 뒤 지난 5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가명정보를 공익·연구·통계의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당사자 동의 없이도 빅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핵심이다. 당사자 동의가 있으면 상업적 목적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