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팟·리프트권 등 '반값 할인' 뜨자마자 1초 만에 매진
지난 5일 오전 10시58분, 스마트폰에서 위메프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애플의 무선 이어폰 ‘에어팟’을 사기 위해서였다. 위메프는 지난 1일부터 매일 오전과 오후 11시 두 차례 선착순으로 ‘특가상품’을 판매 중이다. 이날 나온 에어팟은 정가의 절반 수준인 11만1111원. 접속이 한꺼번에 몰린 탓에 행사 페이지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 끝에 구매 버튼을 눌렀지만 ‘행사 종료’란 문구가 떴다. 시계는 오전 11시2분을 가리켰다.

다음날 휘닉스평창 리프트권 구입을 다시 시도했다. 가격은 단돈 1111원이다. 평소에는 온라인에 싸게 나와도 2만~3만원. 사실상 ‘거저’ 주는 셈이었다. 에어팟보다 수량이 두 배 많은 2000개였지만, 또 실패였다. 위메프 관계자는 “11시에 맞춰 들어오는 사람이 족히 수십만 명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위메프 ‘선공’에 G마켓 11번가 ‘맞불’

11월 대대적인 ‘파격가 할인’을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온라인쇼핑몰은 11번가다. 2008년 11번가를 브랜드명으로 쓰기 시작한 뒤 숫자 ‘11’을 특화해 11월11일을 ‘십일절’이라 부르며 대대적인 할인 행사에 나섰다. 주로 특가상품을 시간을 정해 놓고 판매하는 방식을 썼다. 국내 유통사들은 2~3년 전까지 11번가의 십일절 행사에 대응하지 않았다. 11월은 쇼핑 비수기였기 때문이다. 유통업계는 오랫동안 11월을 추석 명절과 연말 사이에 낀 ‘재미없는 달’로 불렀다.

하지만 중국 광군제가 하루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엄청난 흥행몰이를 하자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랜드 아모레퍼시픽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이 광군제 때 알리바바에서 하루 수백억원씩 매출 실적을 거두는 걸 목격했다. 소비자만 빼앗기는 게 아니라 협력사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졌다. 이랜드는 이번 광군제를 앞두고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영향력이 큰 인플루언서 ‘왕훙’을 섭외했다. 국내보다 중국 시장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상품 정보를 라이브 방송으로 보여줬다. 이랜드 같은 ‘스타기업’ 발굴을 위해 알리바바 아마존 징둥닷컴 등은 국내에 사무소까지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선 위메프가 먼저 치고 나갔다. 상품기획자(MD)가 일일이 물건을 선별해 매월 ‘특가데이’ 행사를 열어온 노하우를 활용했다. 월(月)과 일(日)이 겹치는 날 하는 특가데이 행사를 11월11일에 더 크게 진행하기로 했다. 올해는 이달 1일부터 11일까지 매일 행사를 기획했다. 첫날엔 가장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상품을 구매하면 최대 10만원 한도 내에서 결제금액의 50%를 포인트로 돌려줬다. 사실상 ‘반값’ 할인이었다. 이날 위메프는 사상 최대 거래액인 480억원을 기록했다.
그래픽=허라미 기자 rami@hankyung.com
그래픽=허라미 기자 rami@hankyung.com
파격적 할인이 성공 요인

위메프가 치고 나가자 국내 최대 e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 이베이코리아도 움직였다. 이베이코리아가 운영 중인 G마켓과 옥션은 지난 1일부터 ‘빅스마일데이’란 할인 행사를 시작했다. 할인 상품만 약 1000만 개에 달한다. 할인율도 최대 70%다.

소비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애플 에어팟, LG전자 LED(발광다이오드) 마스크 프라엘, AHC 화장품 등 품목당 10억원어치 이상 판매된 상품이 속출했다. 평소엔 품목당 주 1억원만 넘겨도 ‘대박’으로 불렸는데, 이달엔 초대박 상품이 속출하고 있다. 필립스 에스프레소 커피머신 등 50% 이상 세일한 상품이 특히 잘 팔렸다. 이베이코리아 관계자는 “필립스 커피머신은 평소 할인 행사 때 200개도 팔기 어려운데, 이번에 3000개를 준비해 사흘 만에 모두 팔았다”며 “할인율이 높기도 했지만,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상품을 대거 확보한 게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11월의 쇼핑 잔치’를 주도한 11번가도 가세했다. 11번가는 분위기 조성을 위한 마케팅에 먼저 공을 들였다. 지난달 서울지하철 2호선 객실 전체를 11번가 ‘래핑 광고’로 뒤덮었다. 삼성역 전광판을 활용해 11번가의 행사명 십일절을 대대적으로 노출했다. 상품도 대규모로 마련했다. 지난 3일 내놓은 ‘삼성전자 아기사랑 세탁기’ 100대는 10분 만에, LG전자 TV 50대는 2분 만에 다 팔렸다. 지난 4일 루이비통 등 명품 50개는 4분 만에 동났다. ‘알렉산더맥퀸 스니커즈’ ‘빈폴 벤치파카’ 등 수요가 많고 가격이 높은 상품은 사전 예약 판매도 하고 있다.

할인 행사를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쿠팡도 올해엔 ‘블랙 프라이데이’ 코너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쿠첸 밥솥, SK매직 전기그릴, 한일의료기 전기매트 등을 50% 이상 할인 판매했다. 테팔 공기청정기, 세븐라이너 다리 안마기 등도 할인율을 40~50%로 높게 책정했다.

할인 물량 더 늘어나야

일각에선 이런 특가행사가 미끼 상품을 보여주고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는 ‘꼼수’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티몬은 지난 1일 LG전자 노트북을 9만9000원에 내놔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준비 물량이 단 10대에 불과하다는 게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소비자는 파격적인 가격 할인을 원하는데, 국내에선 아직 물량이 충분하지 않은 게 한계”라며 “앞으로 11월 쇼핑 행사가 자리 잡고, 국내 기업 규모가 커지면 더 많은 제품을 대상으로 할인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