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시 출동하지 못한 통영함의 음파탐지기 납품비리를 계기로 2014년 11월 출범한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현 방위사업수사부)의 전방위 수사는 방산업계를 크게 위축시킨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4개 팀, 117명으로 출범한 합동수사단은 검찰과 국방부, 경찰청, 국세청, 금융감독원에서 파견된 요원도 포함돼 사상 최대 규모였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방산비리는 이적 행위”라며 엄단 의지를 밝힌 데 따른 조치였다. 합동수사단은 ‘털고 또 터는’ 먼지털기식 수사로 방산업계는 물론 군 사기도 크게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 방산업계의 대외신인도도 바닥으로 추락했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장(예비역 준장·육군사관학교 28기)은 “방산업계를 비리의 온상으로 매도해 방산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수사”라고 말했다.
靑 특명에 방산비리 수사 4년…'털고 또 털어도' 절반이 무죄
◆‘용두사미’로 끝난 수사

4일 군과 법조계에 따르면 합동수사단이 4년간 방산비리 사건으로 구속 기소한 34명 중 17명이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구속 후 무죄율이 50%에 달한다. 일반 형사재판(3%)과 권력형 비리재판(6~7%)의 구속 후 무죄율을 크게 웃돈다. 합수단 출범 계기가 된 통영함 납품비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은 2016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합수단이 최대 방산비리로 꼽았던 해군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AW-159)’ 도입 비리와 관련해 2016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최윤희 전 합참의장도 지난달 26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최 전 의장은 2012년 해군참모총장으로 일할 당시 와일드캣(영국 방산업체 제품)이 선정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시험평가 결과서를 허위로 작성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시험평가 결과서 허위작성은 실물평가를 하지 않았어도 평가 기준을 만족했다고 보면 ‘충족’ 또는 ‘적합’으로 판정할 수 있다”며 최 전 의장의 손을 들어줬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검찰 내에서 고위층이 연루된 방산비리 수사 성과를 청와대에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무리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감사원도 방산업계를 비리집단으로 낙인찍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감사원이 2015년 육군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 개발 과정에서 하청업체의 시험용품 재사용 의혹을 사업 전반의 비리로 몰아붙인 끝에 LIG넥스원 연구원 1명이 자살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LIG넥스원 연구원 1명과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 2명은 지난 6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1차 감독기관인 방위사업청도 민사소송 패소율이 36%에 이른다. 국방권익연구소에 따르면 방사청은 2011년 이후 벌인 방산업체와의 소송 141건 중 51건에서 졌다. 패소에 따른 이자 지급 비용만 320억원에 달했다. 행정소송에서도 84건 중 24건에서 졌다. 패소율은 28%다.

문재인 정부도 방산비리를 적폐행위로 규정하고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방산업체에 대한 조사 및 수사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주관으로 감사원과 방사청, 금융정보분석원(FIU) 등이 참여한 ‘방산비리 근절 유관기관 협의회’를 출범시켜 상시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부풀려진 방산비리 규모

‘뻥튀기’가 된 방산비리 규모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4년간 수사한 합수단이 발표한 방산비리 액수는 1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 금액은 비리 혐의가 있는 사업 예산을 모두 합친 것으로, 실제 비리가 저질러진 규모는 아니다. 무죄로 결론 난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사업 규모는 5800억원이었다. 와일드캣 헬기가 전혀 쓸모없는 무기라면 5800억원을 날렸다는 합수단의 주장이 맞다. 하지만 와일드캣은 군 성능요구조건(ROC)에 합격해 지난해 2월 실전 배치를 마치고 정상적으로 운용 중이다. 방산비리 규모 면에서 두 번째로 큰 사업(1100억원)인 공군 전자전훈련장비 도입 역시 대법원에서 무죄로 결론 났다. 방산비리 혐의로 기소된 사업자인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은 회삿돈 횡령과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방위산업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감안해 방위사업전담재판부를 신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통령의 호통과 검찰의 ‘저인망식 수사’만으로는 방산비리 척결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최기일 국방대 교수는 “의혹 부풀리기식 수사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방위산업 이해도가 높은 법원에서 관련 사건을 재판해야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