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지난해 말 울산공장에서 느닷없이 이틀간 파업을 벌였다. 이유가 황당했다. 사측이 미국 수출을 위해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나를 증산하려 하자 이를 막고 나선 것이다. 일부 노조원은 생산라인을 쇠사슬로 묶기도 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대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 대부분은 단체협약 규정에 따라 신차를 양산하거나 추가 생산을 하려면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시장 변화에 따라 회사가 생산 물량을 조절해야 하는데, 노조가 협의권을 남용해 이를 막으면 회사는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車업계 옥죄는 '노조 리스크'…"생산물량 조정도 노조 허락 없인 못해"
◆‘노조의 덫’에 빠진 車업계

올 들어서도 현대차의 ‘노조 리스크’는 어김없이 이어졌다. 현대차는 지난 7월 이틀간 부분 파업을 강행했다.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미국발(發) 관세폭탄 우려까지 커지는 상황에서 노조는 임금 인상을 고집했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1994년, 2009~2011년 등 네 차례를 제외하고는 32년간 매년 파업을 했다. 기아자동차 노조도 마찬가지다.

최근엔 정부와 정치권까지 노사 문제에 숟가락을 얹으면서 현대차 노사 문제가 더 꼬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사내하청) 직원 1만2800명을 정규직으로 특별 고용 중인 현대·기아차에 “비정규직지회와 다시 교섭하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회사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난데없이 교섭 대상도 아닌 비정규직 노조와 답 없는 ‘씨름’을 벌이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GM은 올해 내내 ‘노조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4월 인천 부평 본사에 있는 카허 카젬 사장실에 수십여 명의 노조원이 들이닥쳐 난동을 부린 게 대표적 사례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위기에 놓인 회사가 성과급을 제때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조는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집기를 부쉈다. 이달 들어선 한국GM 노조가 사측의 연구개발(R&D) 법인 분리 추진에 반대하며 간부 파업과 청와대 앞 노숙투쟁 등을 하며 사측을 압박 중이다. 4월 가까스로 경영 정상화 문턱에 들어선 한국GM이 다시 노사 갈등으로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완성차업계의 ‘모범생’으로 통하던 르노삼성자동차 노조도 이달 초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4년 만에 파업에 들어갔다. 7분기째 ‘적자의 늪’에 빠진 쌍용차는 노조의 반발과 정부 압박으로 해고자 119명을 당초 계획보다 빨리 복직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노조도 회사 생존 걱정해야 할 때”

전문가들은 자동차산업이 위기에 놓인 근본적 원인으로 고질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꼽고 있다. 경직된 노동시장과 높은 인건비, 낮은 생산성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자동차업계가 환율 및 통상 문제 등까지 맞닥뜨리면서 빈사지경에 내몰렸다는 분석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고장 징후’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한국경제신문이 한국자동차산업협회와 국내 완성차 5개사의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2017년 기준)을 조사한 결과 평균 12.3%에 달했다. 경쟁사인 일본 도요타는 5.9%로 한국 자동차회사들의 절반도 안 된다. 독일 폭스바겐도 9.9%로 한국보다 낮았다. 국내 자동차회사들의 1인당 연간 평균 임금은 9072만원이었다. 도요타(832만엔·약 8400만원)와 폭스바겐(6만5051유로·약 8300만원)보다 많다. 인건비는 높은데 생산성은 오히려 더 낮다. 한국(완성차 5개사 기준)에서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HPV·2015년 기준)은 26.8시간이다. 도요타(24.1시간)와 미국 GM(23.4시간)보다 각각 11.2%, 14.5% 더 길다.

전문가들은 이런 구조적 격차를 바로잡지 않으면 경쟁력을 다시 확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질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깨지 못하면 산업의 경쟁력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며 “노조도 이제 회사의 생존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