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던 칠레 와인을 '프리미엄' 반열 오르게 한 차드윅 에라주리즈 회장
명망가나 재벌 집안에서 태어난 자손들의 바람직한 삶은 어떤 것일까. ‘금수저’ ‘흙수저’라는 단어가 나올 만큼 사회 계층이 분화돼 있는 시대에 한 와인업계 ‘금수저’의 행보를 통해 귀감을 얻고자 한다. 남들이 안전하게 다른 사람을 따라 하고 눈앞의 이득에만 몰두할 때, 혼자서 멀리 보는 안목으로 끈질기게 혁신을 일궈낸 이들이다. 그중에서도 칠레에서 대통령 네 명을 배출한 최고 가문이자 칠레 프리미엄 와인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와이너리 ‘에라주리즈’의 에두아르도 차드윅 회장에 대한 이야기다.

1983년 24세의 나이에 차드윅 회장은 와인산업에 뛰어들었다. 칠레의 와인 종사자 대부분이 모두 산티아고 근방에 와이너리를 만들 때 그곳으로부터 북쪽으로 100㎞나 떨어진 아콩카구아 지역에 비냐 에라주리즈를 설립했다.

1988년엔 선조의 이름을 따 에라주리즈 최초의 울트라 프리미엄 와인 ‘돈 막시미아노’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미국의 로버트 몬다비와 합작해 비냐 세냐를 설립했다. ‘세냐’라는 또 다른 울트라 프리미엄 브랜드를 1997년부터 생산했다.

잘 알려진 대로 프랑스의 바롱 필립사와 칠레의 콘차이토로사가 합작해 1997년 설립한 ‘알마비바’가 1998년 첫 빈티지를 생산한 바 있다. 에라주리즈는 이들보다 합작회사로는 2년, 프리미엄 와인의 첫 생산은 1년이 앞선 셈이다.

그는 이런 도전을 이어갔다. 2002년 아버지를 기리는 세 번째 울트라 프리미엄인 ‘비네도 차드윅’을 내놨다. 이 와인은 2015년에 칠레 역사상 최초로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100점 만점 평가를 받았다. 명실공히 칠레 최고의 프리미엄 와인임을 전 세계에 인정받은 것이다.

차드윅 회장이 1988년부터 프리미엄 와인을 제조했지만, 칠레 와인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냉담했다. 2000년 초반까지 세계 와인 애호가들은 칠레에서 프리미엄 와인이 생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칠레에서도 프리미엄 와인 시장은 없었고 칠레 와인은 ‘데일리 와인’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차드윅 회장은 칠레 프리미엄 와인에 대한 비전을 품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감히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프랑스 그랑크뤼급 와인들과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보르도 특1등급 5대 샤토 와인과 이탈리아 슈퍼투스칸을 제치고 비네도 차드윅과 세냐가 테이스팅에서 1, 2등을 차지했다. 와인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대사건이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결과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17개국을 돌면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했다. 그가 만든 돈 막시미아노, 세냐, 차드윅을 비롯한 프리미엄 와인들은 테이스팅 때마다 1~5위를 차지하며 증명에 성공했다.

차드윅 회장은 일찍이 “한국의 프리미엄 와인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며 데일리 와인을 마시는 이들도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이유로 에라주리즈는 국내 편의점 시장에까지 진출했다. GS리테일과 손잡고 ‘넘버 나인 크로이처’(사진)라는 와인을 내놨다.

제품명의 ‘넘버 나인’은 베토벤이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에서 따왔다. 이 곡은 베토벤이 남긴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 소나타로 평가받는다. 악기로서 바이올린의 위상을 피아노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마치 칠레의 데일리 와인을 최고급 프리미엄 와인으로 급상승시킨 에라주리즈와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평범했던 칠레 와인을 '프리미엄' 반열 오르게 한 차드윅 에라주리즈 회장
와인 레이블에는 베토벤의 소나타 ‘크로이처’를 듣고 영감을 받은 프랑스 화가 프리네의 감성이 입혀져 있다. 와인의 깊이를 명곡과 명화에 빗대 은유적으로 표현한 독특한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이들 와인은 일상 속에서 고급스러움을 찾는 요즘 소비자들에게 오감 만족의 경험을 선사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먼 나라 칠레에서 일궈진 ‘금수저’의 혁신을 가까운 편의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이지혜 < 와인나라 아카데미 교육M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