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엔 실패 따라…R&D 지원, 단발성 쪼개기→계단식으로 바꿔야"
“혁신은 반복적인 실험과 실패의 결과다. 실패한 프로젝트도 그 성과가 인정되면 더 지원해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도록 연구개발(R&D) 지원 방식을 계단식으로 바꿔야 한다.”

김선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혁신기업연구단장(사진)의 말이다. R&D 지원 과제 결과에 대해 ‘성공과 실패’란 단기적이고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 기업이 혁신적인 기술 개발에 나서기 힘들다는 얘기다.

김 단장은 단발성 쪼개기식의 현행 R&D 지원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단계별 지속과 종료 판정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진행 단계별로 당장은 실패했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엿보이면 추가 지원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다.

김 단장은 국내 의료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루닛을 예로 들었다. 이 회사는 몸에 해로운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 디지털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영상진단을 내리는 ‘데이터기반 이미징 바이오마커(DIB)’ 기술을 개발해 사업화에 성공했다. 루닛은 2013년 설립 초기 AI로 옷, 액세서리를 추천하는 사업 모델을 구상했다. 하지만 시장성이 크지 않다는 결론이 났다. 포기하지 않고 의료 분야로 방향을 바꿔 새로운 사업 모델 개발에 나섰다. 김 단장은 “현행 지원 방식으론 개별 기업이 R&D를 진행하다가 시장 상황이 변화거나 방향 전환이 필요할 때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며 “루닛과 같은 기업을 키울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R&D사업 성과를 특허와 고용, 매출과 같은 정량적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판매 제품의 원가 변화와 기업의 주요 판매처 변화 등 다양한 지표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단장은 2008년부터 10여 년간 중소기업연구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에서 중소기업 정책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왔다. 그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지원 규모가 세계 상위권이지만 혁신 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코리아 R&D 패러독스’와 관련해선 “정부가 R&D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누적 시간이 선진국에 비해 짧다”며 “일종의 성장통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또 “정부는 절대적인 R&D 금액을 늘리는 데 집착하기보다 R&D사업이 민간 투자 마중물이 되도록 연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팁스(TIPS: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와 같은 프로그램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