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VC 파이프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인은 얼마 전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참석한 심사장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질문을 하는 평가위원 중 질문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이 분야와 전혀 관계없는 자동차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질문을 위한 기초지식도 없다고 느꼈다. 그는 “심사위원의 질을 높이지 않으면 제대로 된 평가가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내 중소기업 R&D 지원 사업을 실효성 없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을 꼽으라면 평가 방법과 평가위원 쏠림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R&D 과제는 그동안 기술성과 사업성을 중심으로 평가했다. 기술성의 경우 기존 기술과 차별성이 있고 실제 개발 가능한지를 살펴본다. 사업성은 판매처 확보 등 제품화 및 매출 증대로 이어지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도 사업성 지표의 일부로 파악하고 있다.

기술 중심의 평가가 이뤄지다 보면 사업성이 떨어지는 과제만 남는다는 게 꾸준히 제기된 지적이다.

서류·대면평가에 참여하는 전문가와 현장 조사 위원이 이원화돼 있던 구조도 문제였다. 정부 관계자는 “대면 평가는 산·학·연 전문가가 하고 현장 조사는 지방청 공무원이 따로 하는 문제점이 있었다”며 “산·학·연 전문가가 기업 현장을 직접 찾는 ‘사업성 심층 평가 방식’을 2015년 도입하고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했다.

평가위원 편중 현상도 논란의 대상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김규환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 기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정원은 지난해 중소기업 R&D 평가를 하기 위해 대학 연구소 기업 등 관련 전문가 4519명을 위촉했다. 이들은 총 1만5551회 심사를 했다. 전체 위원의 19.2%인 887명이 5회 이상 심사에 참석, 평가 과제의 61.42%인 9522건을 담당했다. 20회 이상 심사에 나선 위원도 104명에 달했다. 50회 이상 참여한 위원이 3명이었고 심사비(수당)로 1000만원 이상 받은 사람도 18명으로 조사됐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