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만 조작국 지정돼도 한국 수출 '치명타'
미국이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를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어서 한국 외환당국도 비상이 걸렸다. 국내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만한 사안인 데다 자칫 한국까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다.

외환당국은 미 재무부에 한국의 외환시장 투명성 개선 노력을 지속적으로 설명하는 등 대처에 부심하고 있다.

◆한 달 뒤 환율조작국 발표

외환당국 고위관계자는 2일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의회에 제출하는 ‘환율보고서’에 환율조작국 및 환율 관찰대상국을 명시한다. 올해 4월13일 내놓은 보고서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없었고, 관찰대상국으로 한국 중국 일본 독일 스위스 인도 등 6개국이 올랐다. 다음달에는 15일께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다. 미국 정부는 환율조작국에 자국 기업 투자를 제한하기 때문에 해당 국가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입지가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지정 이후 1년간 자국 화폐가치 절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미국 조달시장에도 참여할 수 없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 한 곳만 환율조작국으로 찍는 데 따른 부담 때문에 한국까지 같이 지정할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이라며 “미국 측에 한국이 내년 3월부터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기로 했고 최근 대(對)미국 경상 및 무역수지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수시로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 통화해 한국의 외환시장 투명성 개선 노력을 설명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중국만 지정돼도 타격

한국은 그동안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을 전후해 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요구하자 내년 3월부터 이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외환시장에서는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외환당국의 판단은 다르다. 미국이 한·미 FTA 개정협상 타결 후에도 “수입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어서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년 넘게 사문화됐던 종합무역법을 적용하면 한국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환율조작국을 지정할 때 적용할 수 있는 법은 두 가지다. 2016년부터 시행 중인 교역촉진법과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이다. 교역촉진법은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초과 △경상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초과 △연간 달러 순매수 GDP 대비 2% 초과 또는 12개월 중 8개월 이상 달러 순매수 등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게 해놨다.

반면 종합무역법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국 △유의미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 등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만 충족해도 지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사실상 모든 대미 무역흑자국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중국만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돼도 한국 경제엔 큰 타격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미국과 한·중·일 간의 환율 관련 현안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중·일 3개국 중 한 나라라도 미국의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3개국에 그 영향이 크게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의 대미 수출이 10.0% 감소하면 한국의 대중 수출은 19.9%, 전체 수출은 4.9%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위안화와 원화의 달러 환율 동조화 현상이 뚜렷한 점도 외환당국엔 부담이다. 중국이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는 것만으로도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확대될 전망이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