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용 대박’은 100% 민간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경기 활황과 소비심리 회복,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효과로 이익이 늘고 자신감이 붙은 기업들이 과감하게 일자리를 늘린 결과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지방자치단체 등 정부부문 일자리는 거의 제자리인데도 지난달 기준 일자리가 240만 개나 늘어난 배경이다. 반면 한국은 공공부문의 몸집만 커지고 있다. 민간 기업의 활력이 떨어진 결과 일자리 사정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모든 업종에서 고용 증가한 미국

미 노동부의 고용통계를 보면 미국 민간부문은 거의 모든 업종에서 고용이 늘고 있다. 지난달 기준으로 직전 1년간 일자리가 가장 많이 늘어난 업종은 비즈니스서비스다. 51만80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났다. 여기엔 법률서비스, 회계, 건축설계, 컴퓨터 디자인 등 고소득 전문직종이 포함된다.

제조업 일자리 증가도 눈에 띈다. 제조업은 1년 새 일자리가 32만7000개 늘었다.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늘어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법인세 감면과 투자 활성화 정책 등에 힘입어 제조업 분야 기업들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시간주에 본사를 둔 제조업체인 인터내셔널휠앤드타이어의 네트래시 레게 사장은 “성과가 매우 좋다”며 “3년간 인력을 두 배로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소매업의 부활도 미국 내에서 주목받고 있다. 소매업은 온라인 쇼핑에 밀려 지난해에는 일자리가 3만 개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선 경기 회복의 온기가 퍼지면서 7월까지 7개월 만에 일자리가 8만3000개 늘었다.
기업 뛰게 한 美, 모든 업종서 '일자리 풍년'인데… 한국은 정반대
신용평가회사인 피치의 에릭 로젠탈 선임국장은 “모든 이들이 얘기했던 ‘소매업 종말론’은 어디에서도 현실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상점(소매업)과 공장(제조업)이 올해 예상 밖의 고용 붐을 주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도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운수창고업 등 일부 업종의 경우 구인난이 극심해지고 있다. 쇼핑몰 등에는 구인 광고가 곳곳에 붙어 있다. 실업률이 지난 5월 3.8%로 17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낮아지는 등 사실상 완전고용에 도달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지난달 16~24세 청년실업률도 1966년 이후 52년 만에 최저로 떨어지면서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졌다. 힘들고 보수가 적은 기존 일자리 대신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퇴직하는 근로자가 늘면서 자발적으로 임금을 올리는 기업도 많아졌다. 일자리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 모습이다.

◆공공 일자리 매달리는 한국

한국의 고용 사정은 딴판이다. 통계청이 지난 17일 발표한 ‘7월 고용통계’를 보면 공공부문에 해당하는 공공행정·국방·사회보장행정 분야 일자리는 6만6000개 늘어났다. 공공부문 성격이 강한 보건·사회복지 일자리도 14만9000개 증가했다. 반면 가장 많은 일자리를 담당하는 제조업에선 취업자 수가 12만7000명이나 줄었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일자리인 제조업에선 4개월 연속 취업자가 감소해 비상이 걸렸다.

자영업자도 3만 명이나 줄었다. 지난달 공공부문과 전 업종을 통틀어 새로 늘어난 일자리는 5000개에 그쳤다. 2010년 1월(-1만 개) 이후 8년6개월 만에 최악이다.

실업자는 지난달 103만9000명으로 올 들어 7개월 연속 100만 명을 넘었다. 이는 1999년 6월~2000년 3월 이후 약 18년 만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올해 일자리 증가 전망치를 32만 명에서 18만 명으로 낮췄다. 지금 추세라면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정부는 규제 혁신 등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는 정책보다 기존 소득주도 성장과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에 매달리는 모습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 주재의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을 발표하며 2022년까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난달 ‘고용 쇼크’를 부른 통계가 발표된 이후에는 정부, 청와대, 여당이 나서 내년도 일자리 예산을 올해(12.6%)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업 투자를 이끌어낼 규제 혁신이나 기업 기(氣) 살리기 정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최악의 고용대란을 막기 위해 어느 정도 재정투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정부가 민간부문의 활력을 높이는 정책은 도외시한 채 지나치게 재정확대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이태훈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