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인데 맥 못추는 맥주… 성수기가 사라졌다
“맥주 ‘골든 시즌’이 사라졌다.”

요즘 주류업계 영업사원들이 하는 얘기다. 7~8월은 맥주업계의 최고 성수기다. 연간 매출의 약 40%가 두 달 안에 몰려 ‘골든 시즌’으로 불렸다. 날이 더워지면서 맥주를 찾는 사람이 늘고, 휴가철이 겹치며 가정용 수요도 증가한다.

올해는 성수기 풍경이 달라졌다. 7월1일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의 여파로 업소용 맥주 판매량이 급감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가정용 수요마저 크게 줄었다. 대형마트의 맥주 판매량은 전년 대비 6.6% 감소했다. 국산 맥주는 감소율이 14.6%에 달했다. 7월 소주 판매량도 4.1% 감소했다.

맥주 ‘성수기 마케팅’도 무용지물

여름인데 맥 못추는 맥주… 성수기가 사라졌다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주류 등 국내 맥주 3사는 지난 5월부터 성수기를 대비해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해왔다. 하이트진로는 올여름을 겨냥해 국내 최초로 한정판 72개 패키지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를 내놨고, 오비맥주는 신기술을 적용한 ‘카스 후레쉬캡’, 소용량 ‘카스 한입캔’ 등을 선보였다. 롯데주류도 피츠와 클라우드의 현장 마케팅에 나섰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 제도가 시행된 지난 1일 이후 맥주회사엔 비상이 걸렸다. 서울 강남구, 마포구, 종로구 등의 외식업소에서 맥주 매출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국내 맥주 3사는 매출의 약 60%가 업소용에서 나온다. 한 주류회사의 마포구 담당 영업사원은 “7월 들어 단체회식을 할 수 있는 대형횟집과 고깃집 매출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며 “연초 불거진 ‘미투 운동’ 이후 회식을 기피하는 문화가 확산된 데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매출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가 추정하는 맥주업계의 7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5% 줄었다. 단체 회식의 단골 주류인 소주 매출도 타격을 입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소주 매출은 맥주가 많이 팔리는 여름에 보통 감소하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더 큰 폭으로 줄고 있다”고 말했다.

“폭염이 밉다” 술 매출도 ‘뚝’

계속되는 폭염은 맥주와 소주 소비를 더 위축시키고 있다. 주류업계는 낮 최고기온이 32~33도 정도일 경우 맥주 매출이 늘어나지만 그 이상 기온이 올라가면 술 마시는 것 자체를 꺼리는 사람이 늘면서 오히려 매출이 정체에 빠진다고 보고 있다. 이달엔 폭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3일 이후 매출이 크게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지난 1일부터 29일까지 대형마트에서 맥주와 소주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6%, 4.1% 감소했다. 편의점에선 맥주 판매량이 8.1% 늘었지만 평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증가폭이 둔화했다. 편의점의 소주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오히려 1.9% 줄었다.

폭염으로 야외활동을 기피하는 사람이 많아진 탓에 피서철 특수도 자취를 감췄다. A주류회사 관계자는 “부산 해운대, 강릉 경포대 등 유명 피서지에서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을 벌였지만 낮 시간대 해변이 텅 빌 정도로 극심한 폭염이 계속돼 효과가 미미하다”며 “8월에도 무더위가 이어진다는 소식이어서 올여름 실적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말했다.

주류업계는 하반기를 더 걱정하고 있다. 폭염은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외식업 경기는 연초부터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집계한 2분기 외식산업경기전망지수는 1분기보다 크게 하락했다. 업종별로 유흥주점업(54.58)의 경기지수가 가장 낮았다. 외식산업경기전망지수는 기준치인 100을 초과하면 경기 호전을, 100 미만일 때 경기 둔화를 의미한다.

주류업계 한 임원은 “주류업계뿐만 아니라 외식경기 전체가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미투운동, 주 52시간 근무제 등의 영향을 받고 있다”며 “사라지는 회식문화는 수십 년을 이어온 주류회사 경영의 근간을 통째로 흔드는 것인 만큼 위기감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