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0월 미국 인공지능(AI) 음성인식기술 업체 사운드하운드에 55억원을 투자했다. 연말께 이스라엘 자율주행 기술기업 옵시스에 33억원을, ‘아시아의 우버’로 불리는 싱가포르 그랩에 270억원을 넣었다. 올해는 미국 배터리업체 아이오닉머티리얼(55억원)을 시작으로 호주 차량공유기업 카넥스트도어와 자율주행차용 레이더를 생산하는 미국 스타트업 메타웨이브에도 투자했다. 이들 벤처는 모두 자율주행차 전기차 카셰어링 등 현대차가 미래 먹거리로 관심을 두고 있는 기술 분야 업체다. 2000년대까지 외부 투자 및 인수합병(M&A) 대신 수직 계열화에 집중하던 것에서 벗어나 외부로부터 기술 수혈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지켜온 폐쇄형 순혈주의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고 보고 외부에 문을 열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체 기술 개발로는 기술혁신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 보고 개방형 혁신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국내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해외 벤처 인수와 지분 투자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부정적 여론과 각종 규제로 벤처 인수에 소극적인 것과 딴판이다.삼성전자도 몇 년 전부터 해외 기업을 꾸준히 인수하고 있다. 2016년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것은 국내 기업 M&A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스타트업 투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같은 해 미국 클라우드 기술 스타트업 데이테라에 400억원을 투자했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 스타트업인 일본 큘룩스에는 135억원을, 소니 출신 가상현실(VR) 기술 스타트업 포브에는 110억원을 투입했다. 삼성전자는 또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AI 블록체인 등 해외 스타트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LG전자도 차세대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해외 기업 인수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오스트리아 자동차 조명기업 ZKW 지분 100%를 11억유로(약 1조4400억원)에 인수했다. 5월 미국 로봇개발업체 보사노바 로보틱스에 34억원을 투자했다.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17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을 적용한 모바일 D램(사진) 양산에 들어갔다. 경쟁사들은 한 단계 아래인 18㎚ 공정도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됐다.삼성전자는 이달부터 경기 평택공장에서 17㎚ 모바일 D램 양산을 시작한다고 26일 발표했다. 17㎚ D램은 현재 스마트폰에 주로 사용하는 23㎚ D램과 비교해 동작 속도와 생산성이 두 배 이상 우수하다. 지난해부터 고급 스마트폰에 적용되는 18㎚ D램과 비교하면 소비전력량은 10% 적고 두께는 20% 얇다. 똑같은 배터리로 더 오래 작동하면서도 더 얇은 스마트폰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7㎚ D램은 내년 상반기 판매될 ‘갤럭시 S10(가칭)’에 처음으로 적용된다.이날 삼성전자의 발표는 두 가지 면에서 업계 전반의 예측을 뛰어넘었다. 우선 17㎚ D램을 평택공장에서 생산한다고 발표한 대목이다. 지난해 9월 본격 가동에 들어간 평택공장은 원래 3차원(3D) 낸드플래시 전용 공장으로 지어졌다. D램이 품귀현상을 겪으면서 공장 2층에 D램 생산설비를 갖추는 작업을 해왔지만 가동은 9월로 예상했다. 17㎚ D램 생산은 이 같은 예측을 2개월 앞당긴 것으로, 늘어나는 D램 수요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D램 공정 전반의 미세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날 삼성전자는 17㎚ 공정이 적용된 제품이 전체 D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연내 70%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쟁사들은 18㎚ 공정 적용률도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D램은 미세화 수준이 높을수록 생산성이 올라가고 생산원가는 줄어든다. 똑같은 물량을 공급하더라도 삼성전자가 더 높은 수익을 얻게 된다.전세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마케팅팀 전무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2세대 10나노급 모바일 D램을 양산해 갈수록 늘어나는 스마트폰 D램 용량 확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도 프리미엄 D램 생산을 늘려 초고속, 고용량, 초절전 메모리 시장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주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