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3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대관 담당자들 사이에 때아닌 ‘첩보전’이 벌어지고 있다. 경쟁사가 정부에 인공지능(AI) 스피커를 몇 대 기증하기로 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이를 파악하려고 관가 안팎의 각종 연줄까지 동원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통신사들 사이에서 ‘눈치작전’이 벌어진 것은 기획재정부가 혁신성장 프로젝트의 하나로 취약계층에 AI 스피커 무상보급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홀몸노인 시각장애인 등에게 AI 스피커를 보급하면 이들이 혁신기술 혜택을 받을 수 있고, 통신사는 AI 스피커라는 인프라를 이용한 각종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게 기재부의 논리다. 기재부는 한국정보화진흥원을 통해 통신사로부터 AI 스피커를 기증받고, 매칭 방식으로 기재부도 예산을 투입해 비슷한 양의 스피커를 구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는 이동통신 3사에 얼마나 기증할지를 자율적으로 써내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경쟁사에 비해 적게 적어냈다간 정부에 찍힐까봐 두렵다”며 “차라리 몇 대 기증할지를 정해주는 게 낫지…”라고 곤혹스러워했다.

AI 스피커 무상보급이 혁신성장 프로젝트가 된 것은 2개월 전 열린 한 행사와 관련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5월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AI 스피커 덕분에 육아가 수월해졌다는 시각장애인 1급인 주부 조현영 씨의 경험담을 들었다. 문 대통령이 조씨의 사연에 크게 감동했다는 게 알려졌고, 기재부 공무원 사이에서 나온 혁신 아이디어가 AI 스피커 무상보급이었다.

[현장에서] 官 주도 혁신성장의 '민낯'
정부가 좋은 의도로 프로젝트를 기획했겠지만 통신사들은 이미 자체적으로 AI 스피커를 취약계층에 무상으로 지급하고 있다. 기업이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정부가 숟가락만 얹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AI 스피커 무상보급이 혁신성장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업계의 지적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기재부가 기업 돈으로 취약계층을 지원하자고 혁신성장본부를 출범시킨 건 아닐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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