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없는 사람을 하늘에서 떨어뜨려 주기라도 한답니까. 대책도 없이 하라고만 하니 답답합니다.”

3년 뒤 적용받는 금형업체들 "보완책 없으면 사업 접어야 할 판"
수화기 너머로 분노가 전해져왔다. A사장은 경기 안산에서 금형업체를 수십 년간 운영하고 있다. 그의 회사는 다른 대부분 금형업체와 마찬가지로 직원 수가 50인 미만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3년 뒤인 2021년 7월부터 적용받는다. 하지만 A사장은 “3년이 아니라 10년이 지나더라도 지금과 같은 제도 아래에서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금형업은 대량 생산되는 각종 제품에 들어갈 부품을 찍어내는 틀을 만드는 업종이다. 금형을 얼마나 정밀하게 만드느냐에 따라 금형을 통해 생산한 부품을 조합한 완성품의 품질도 결정된다. 금형산업이 ‘뿌리산업’으로 불리는 이유다.

손으로 일일이 제작해야 하는 공정이 많아 금형업 종사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해당 업종에서 일하며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국내 금형업 종사자가 6만여 명에 이르지만 외국인 근로자는 거의 없다.

A사장은 “당장 내일부터 사람을 받아 훈련시킨다고 해도 3년 뒤에 충분한 숙련도를 갖추기 힘들다”며 “단순한 제조업무는 사람을 늘려 교대로 할 수 있다지만 금형업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한국 업체들의 핵심 경쟁력인 납기 단축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A사장은 “금형업체들은 대기업의 3~4차 협력업체”라며 “대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해 양산 계획을 잡으면 얼마나 빨리 금형을 만들어주는지가 핵심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세탁기 등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금형은 수주 뒤 5개월, 자동차에 필요한 프레스 금형은 6개월 이상 집중적으로 개발해 제작된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 개발 시간도 그만큼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금형업체들은 품질은 일본에, 가격은 중국에 조금씩 밀린다”며 “제품에 따라 일본의 절반 수준인 납기 경쟁력마저 떨어지면 한국에서 금형업 자체를 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산과 경남 창원 등에 밀집돼 있는 금형업체들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추이를 지켜보며 신규 고용과 설비 투자까지 미루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특별한 대책 마련 없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하면 사업을 접겠다는 업주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들 업체를 대표하는 금형산업조합은 올 들어 정부와 국회에 이 같은 현장의 의견을 전달했다. 최소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3개월에서 1년으로 늘려달라고 정부에 호소했지만 “주 52시간 근로제도의 원칙은 이미 정해진 만큼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