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미국 달러화 예금에서 석 달 새 15조원(약 134억달러)이 넘는 ‘뭉칫돈’이 빠져나갔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를 훌쩍 넘어서자 환차익을 위한 환매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 급등에 '달러예금' 석 달새 15兆 이탈
한국은행이 16일 발표한 ‘6월 거주자 외화예금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국내 거주자의 달러화 예금 잔액은 566억5000만달러로, 전달(625억4000만달러)보다 58억9000만달러(약 6조6500억원) 감소했다. 지난 3월 말 700억8000만달러에서 석 달 새 134억3000만달러나 줄었다. 3월 말까지만 해도 달러당 1063원50전이던 환율이 5월 말 1078원에서 6월 말 1115원까지 치솟으면서 달러가 비쌀 때 팔려는 수요가 몰린 데 따른 것이다. 석 달 새 달러가치는 4.84%(51원50전)가량 상승했다.

달러화 예금에서 빠져나간 뭉칫돈의 대부분은 판매대금을 달러로 보유하고 있던 수출 기업들이 매도한 자금으로 분석된다. 6월 말 기업들의 외화예금 잔액은 533억5000만달러로 전달보다 64억6000만달러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달러화 예금이 83.8%를 차지해 기업들이 달러 6조원어치를 원화로 바꾼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전체 외화예금 가운데 21%를 차지하는 개인 잔액도 5월 말 149억8000만달러에서 6월 말 142억7000만달러로 7억1000만달러 줄었다. 달러화 정기예금은 연 2% 안팎의 이자와 함께 환차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어 환테크를 노린 개인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달 들어서도 달러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어 달러화 예금 이탈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16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1129원으로 1130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외환 전문가들은 무역분쟁과 신흥국 자금유출,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 등으로 최근 원화 약세가 부각됐지만 향후 추가 상승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수출 호조세가 지속되고 있고, 달러화 공급도 안정적”이라며 “원·달러 환율이 정점을 찍고 안정된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외 불확실성에 따른 변동성은 커질 수 있지만 당분간은 1080~1130원 수준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환차익을 노리고 달러화 예금을 선택한 경우라면 5% 안팎의 목표 수익률을 잡고 분할매수 및 분할매도로 접근하는 게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