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현대제철은 ‘철근 감산(減産)’ 결정을 내렸다. 수요가 줄면서 재고가 쌓인 탓이다. 건물의 뼈대 역할을 하는 철근은 건설 현장에서 주로 쓰인다. 건축 구조용 강관(파이프)을 미국에 수출해온 경북 포항의 중소 철강업체 A사도 이달 생산량이 작년 동기 대비 반 토막 났다. 미국의 철강 쿼터(수출물량 제한)로 수출길이 막혀서다. 철강업계가 내우외환에 빠졌다. 건설 경기 악화로 내수가 줄어드는 데다 미국 등 세계 각국의 규제로 수출 여건도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 성수기에 철근 감산·공장 폐쇄… 철강산업이 녹슬어 간다
◆식어가는 건설 경기

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지난달 말부터 인천과 충남 당진, 경북 포항 공장의 설비 보수 일정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철근 생산량을 6만t가량 줄였다. 330만t인 현대제철의 연간 철근 생산량을 감안할 때 감산 규모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철근 시장 성수기에 생산량을 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철근 시장은 아파트 등 대형 건물의 기초공사가 이뤄지는 3월부터 장마가 시작되기 전인 6월 말까지가 최대 성수기로 꼽힌다.

연간 250만t가량의 철근을 생산해온 업계 2위 동국제강도 감산을 검토하고 있다. 3위 업체인 대한제강은 아예 지난달 31일 부산 신평 공장 제강라인을 폐쇄했다. 공장설비 노후화가 주원인이지만 철근 시장 불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철근 제조사들이 감산과 공장 폐쇄에 나선 것은 수요 부진 속에 원자재값 상승이 겹쳤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건설 수주액은 9조1550억원으로 전년 같은 달(15조9040억원) 대비 42.4% 줄었다. 도로·교량(-91.9%)과 토목(-72.0%) 등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공사 수주액 감소폭이 컸다. 올해 정부의 SOC 예산은 작년보다 14% 감소한 19조원에 그쳤다. 철근 시장 침체가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초 t당 70만원이던 철근값은 이달 61만원까지 떨어졌다. 반면 철근의 원료인 철스크랩(고철) 가격은 t당 42만8000원으로 전년보다 23% 껑충 뛰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근값은 하락하는데 원가는 상승하고 있어 철근을 팔면 팔수록 손해”라고 했다.

◆수출 장벽 쌓는 미국·EU

수출길도 막힐 위기다. 중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수출국인 미국은 올해 한국의 철강 수출 물량을 263만t(2015~2017년 평균 수출량의 70%)으로 제한한 데 이어 품목별 ‘관세 폭탄’까지 부과하고 있다. 유정용 강관(최고 75.81%)과 냉간압연강관(최고 48%) 등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반발한 유럽연합(EU)도 이르면 다음달부터 외국산 철강 제품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할 방침이다. EU는 한국의 네 번째 수출시장이다.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미국 관세 때문에 미국 시장으로 수출하려던 철강이 유럽으로 들어오고 있다”며 세이프가드 발동을 시사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산 철강·금속 제품에 부과된 반덤핑,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 수입규제 건수는 95건에 달한다. 전체 한국산 제품 수입규제(202건)의 절반(47%)가량이 철강 제품에 몰린 것이다. 철강업은 기간산업이라는 특성상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낮아지더라도 구조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이 생산량을 다시 늘리면서 공급과잉 우려가 제기되는 점도 걱정거리다. 지난 4월 중국의 조강(쇳물) 생산량은 7670만t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지난해 연간 조강 생산량(7100만t)을 한 달 만에 쏟아낸 것이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