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지침을 개정해 집중투표제에 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신설한 것으로 확인됐다. 집중투표제는 외국계 헤지펀드 등이 국내 상장사를 공격할 때 도입을 요구하는 것 중 하나다.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정부가 마련하기도 전에 국민연금이 앞장서 지침을 개정한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29일 경제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는 지난달 의결권행사 지침을 개정, ‘집중투표제로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주주가치 증대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려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해 지지하는 이사 후보 1인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헤지펀드 등 외국인 소액주주도 힘을 합쳐 입맛에 맞는 이사를 선임해 기업을 흔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상법엔 집중투표제 근거는 있지만, 각 회사가 정관으로 이를 배제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가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겠다며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민연금이 법이 개정되기도 전에 의결권 행사지침에 집중투표제 근거를 신설하면서 내부에서도 ‘국민연금이 너무 나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 집중투표제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뽑을 때 ‘1주=1표’가 아니라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가져 지지하는 이사 후보 1인에게 집중 투표하는 제도. 예컨대 한 주를 가진 주주도 세 명의 이사를 뽑을 경우 세 표를 행사할 수 있으며, 이를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