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고용부發 기술유출, 반도체 이어 OLED·배터리도 흔든다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공정을 공개하려던 고용노동부 행보에 제동이 걸렸지만,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또 고용부가 국가 핵심기술 유출이 용이해지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개정안을 내놔 귀추가 주목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의 공개 여부는 수원지법이 결정할 예정이다. 수원지법이 삼성전자의 손을 들면 법원의 최종 행정소송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고용부는 보고서를 공개할 수 없다. 업계는 최종 판결이 내년에나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기술 유출에 대해 한 숨 돌리게 됐지만 문제는 남아있다. 고용부가 삼성디스플레이 탕정공장과 삼성SDI 천안공장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에 대해서도 공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들 보고서에는 중소형 AMOLED(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와 전기차용 이차전지 제조 공정 순서, 생산라인 배치도, 사용 장비, 공정별 사용 화학물질 이름과 사용량 등의 정보가 담겼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07년 세계 최초로 OLED 디스플레이 양산을 시작했고 플렉서블 OLED에서도 세계 선두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삼성디스플레이의 플렉서블 OLED 세계시장 점유율은 99.8%였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스마트폰용 플렉서블 OLED시장이 2016년 31억5300만 달러에서 2020년 350억3900만 달러로 1111%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350억 달러 규모 시장을 선도할 기술력을 삼성디스플레이가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고용부가 나서서 유출하려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국가인권위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탕정공장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 집행정지와 취소 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국가 핵심기술 확인 신청도 냈다. 행심위는 지난 3일 집행정지를 받아들였고 산업부는 “사안이 중대하고 추가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심사를 잠정 연기한 상태다.
[이슈+] 고용부發 기술유출, 반도체 이어 OLED·배터리도 흔든다
삼성SDI의 경우 행정소송과 행정심판, 국가핵심기술 확인 요청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차전지 시장의 경우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반도체나 OLED 디스플레이만큼 크지 않아 공정 기술이 공개되면 즉시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다.

중국 정부는 자국 전기차에 대해 최대 50%까지 보조금을 지급한 바 있다. 하지만 2015년부터 한국산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한국 기업을 견제하며 자국 기업을 육성했다. 업계는 아직 한국 기업들이 기술 우위에 있다고 평가하지만 격차가 크지 않아 쉽게 역전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고용부와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산안법 전부개정안도 문제가 된다. 이 법안에는 국내 사업장이 사용하는 모든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고용노동부에 공개하고, 고용노동부는 이를 온라인에 공개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내 모든 기업체가 어떤 물질을 누구에게 받아서 쓰는지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이 개정안 내용은 현 김영주 고용부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를 타깃으로 발의했던 무차별 정보공개 법안 내용과 일치한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MSDS 생산, 보존, 관리 주체는 고용부 장관이 아닌 사업주”라며 해당 법안을 폐기한 바 있다.

고용부는 개정안을 내놓으며 업계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하위법령 개정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을 장관이 되자 정부안으로 급하게 내놓은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용부가 보고서 공개 결정을 내린 경위도 문제가 많다”며 “삼성전자와 반도체 소송을 벌여왔던 이들이 고용부 산재예방보상 정책국장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을 맡아 이번 결정에 관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용부가 전문가 의견을 청취했다고 하는데 산업계 전문가들을 배제했으면서 대체 누구 의견을 들은 것인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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