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계 오랜 난제' 푼 오희 교수 등 5명 호암賞
“민중을 위해 옳은 길을 가고자 합니다. 저를 자랑스러운 제자로 여겨주세요.”

오희 미국 예일대 수학과 교수가 1991년 서울대 수학과 재학 시절 전공과목 중간고사 답안지에 쓴 문장이다. 한창 학생운동에 전력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해 답을 써낼 수 있는 문제가 없어 머리만 쥐어뜯다 담당 교수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결국 대학을 1년 더 다녀야 했던 수학 지진아는 2014년 미국 예일대 수학과에서 최초로 여성 종신 교수에 올랐다. 312년간 유지된 ‘금녀의 벽’을 뚫었다. 그리고 10일 오 교수는 28회 호암상에서 과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학계의 오랜 난제인 ‘아폴로니우스의 원 채우기’를 2010년 풀어낸 것이 주요 공적이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폴로니우스는 큰 원 안에 무수히 많은 원을 채워 넣으면 일정한 패턴을 형성하는 것을 발견했다. 오 교수는 이 같은 패턴이 만들어질 때 들어가는 원의 개수와 구조를 규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오 교수는 2년마다 시상하는 미국 수학회 최고 권위의 ‘새터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기도 했다. 호암재단 관계자는 “수학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것은 물론 ‘아폴로니우스의 원 채우기’를 해결해 눈송이와 고사리 등 자연계에 존재하는 여러 구조의 비밀을 푸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총학생회에서 노동분과장까지 맡았던 오 교수는 ‘답이 없는 사회과학이 맞지 않아’ 수학의 세계로 되돌아갔다. 학창 시절 한눈을 팔고도 세계적 수학 석학으로 우뚝 선 비결에 대해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원론적인 답을 내놨다.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말밖에. 재능은 한계가 있고 뛰어난 사람은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이날 호암재단은 오 교수를 포함해 5명의 호암상 수상자를 선정해 발표했다. 공학상에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 의학상에 고규영 KAIST 의대 교수, 예술상에 연광철 서울대 음대 교수, 사회봉사상에 강칼라 수녀 등이다.

노벨상 후보로도 물망에 올라 있는 박 교수는 장시간 사용해도 발전효율이 떨어지지 않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가공이 쉽고 생산비도 적어 차세대 태양전지로 각광받고 있다. 모세혈관 연구 전문가인 고 교수는 암세포의 혈관을 활용해 항암제를 주입하는 역발상을 통해 암 정복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연 교수는 단신의 동양인이라는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정확한 발성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세계 정상급 성악가로 인정받고 있다. 강 수녀는 1968년 선교를 위해 모국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와 소외계층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있다. 50년간 한센인과 윤락 여성, 노숙자 등을 위한 생활안정 및 교육사업을 이끌고 있다.

호암상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생을 기려 학술과 예술, 사회발전 및 인류복지 증진 등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사에게 수여된다. 이번 28회 시상까지 143명의 수상자에게 244억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호암재단은 노벨상 수상자 등이 포함된 심사위원회와 해외 석학 자문단 등을 중심으로 4개월간 심사해 수상자를 정했다. 시상식은 6월1일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다.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메달, 상금 3억원을 수여한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