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사전 대비를 소홀히 한 태광그룹 금융계열사인 흥국생명에 ‘무더기 제재’ 조치를 내렸다. 금리 리스크가 큰 상품을 무리하게 판매해 역마진 가능성을 방치했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자본확충 계획을 수립해 지급여력(RBC)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게 금융당국의 지적이다.

2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흥국생명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경영유의사항 2건, 개선사항 20건을 통보했다. 금감원이 한 보험사를 대상으로 보통 10여 건의 경영유의사항 및 개선사항 등을 전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무더기 제재는 매우 이례적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최저보증이율을 일반 저축성보험보다 높게 적용한 특정 상품을 집중 판매하면서도 판매 목표조차 수립·관리하지 않았다. 향후 금리 상승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없이 이율을 높게 책정해 금리역마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금감원의 분석이다. 금감원 측은 이에 따라 IFRS17 시행 시 자본을 계획보다 추가적으로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RBC비율이 하락했음에도 적기 시정조치 가능성과 대응 방안을 마련해 내부 위원회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3분기 흥국생명의 RBC비율은 157.6%로, 금융당국의 권고치(150%)를 가까스로 넘어서는 수준이다.

금감원은 “앞으로 감독제도와 금융시장 상황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중·장기 자본확충 계획을 재수립해야 한다”며 “이 같은 계획을 이사회에 보고하고 대주주와 협의해 자기자본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흥국생명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등 자본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며 “금감원이 지적한 개선사항도 경영 전략 등에 이미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