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국내총생산(GDP)이나 기업 자산증가율에 연동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처럼 자산총액 기준을 5조원, 10조원 식으로 고정해 놓으면 경제성장에 따른 기업 규모 변동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야 할 국내 중견기업이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재벌기업’ 규제에 묶이는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다.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GDP 증가율 연동 추진
◆기준에 경제 여건 반영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연세대 산학협력단으로부터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에 관한 연구’ 연구용역 결과보고서를 제출받은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공정위는 지난해 7월 경제 여건 변화가 자동적으로 반영되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맡겼다.

대기업집단은 1987년 제도가 도입되면서 지정 기준이 자산총액 4000억원으로 정해진 뒤 1993년 30대 기업집단, 2002년 자산총액 2조원, 2009년 5조원, 2016년 10조원(공시대상 기업집단 5조원)으로 네 차례 변경됐다. 하지만 이 기준들은 경제 여건을 적기에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고정된 자산총액 기준은 대기업집단 지정 기업 수를 계속적으로 증가시켜 과잉규제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네이버가 대기업집단으로 새로 지정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연세대 산학협력단은 대안으로 GDP 대비 자산총액 일정 비율(0.5%, 1%)로 정하는 방안, 기존 자산총액 기준에 명목 GDP 성장률을 반영하는 방안, 기존 자산총액 기준에 대기업 자산증가율을 연동하는 방안을 비교했다. 그 결과 현실 경제상황의 반영, 규제 안정성, 기존 기준과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기존 기준에 대기업집단 자산증가율이나 명목 GDP 성장률을 연동하는 방안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GDP 증가율 연동이 유력

과거 자료를 이용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2016년 대기업집단 수는 명목 GDP 증가율을 연동했을 때 49개, 자산증가율을 연동했을 때 37개로 실제 지정된 숫자(65개)보다 적었다. 연세대 산학협력단은 “대기업집단의 실제 경제상황을 반영하는 데는 GDP 증가율보다는 자산증가율이 적합하지만 기존 기준과 차이가 커지는 문제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공정위는 연구용역 보고서를 토대로 조만간 내부 검토의견을 확정해 국회와 협의할 계획이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기준은 공정거래법 시행령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공시대상기업집단은 법에 기준이 명시돼 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에 GDP를 반영할 것을 주장한 데다 국회에도 같은 취지의 법률안이 잇달아 발의돼 자산증가율보다는 GDP 증가율 채택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공시대상기업집단을 폐지하고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일원화하되 그 기준을 직전년도 GDP의 0.5%로 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2016년 GDP(실질 기준 1504조원)를 감안하면 약 7조5000억원이 기준이 된다.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도 2016년 7월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회와 협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방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