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삼양패키징 대표가 서울 연지동 사옥에서 종이 소재로 제작된 음료 용기인 카토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양패키징 제공
이경섭 삼양패키징 대표가 서울 연지동 사옥에서 종이 소재로 제작된 음료 용기인 카토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양패키징 제공
이경섭 삼양패키징 대표(부사장·53)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페트(PET) 음료를 살 때 병 바닥부터 확인한다. 삼양패키징이 생산했다는 ‘SYP’ 로고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영업사원 시절부터 고객사 물건을 팔아주려고 시작된 버릇”이라며 “우리 회사 페트병이 나올 때까지 마트를 샅샅이 뒤진 적도 여러 번”이라고 했다.

왜 1위인가

8일 자신을 ‘병팔이’라 부르는 이 대표가 근무하는 서울 연지동 사무실에 들어서자 수십 종의 페트병들이 책상 한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이트 맥주병 용기부터 샘표 간장병, 광동 옥수수수염차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는 “국내외 고객사는 50곳이 넘고, 제품과 용량까지 따지면 400개가 넘는 페트병을 패키징(포장)하고 있다”고 했다.

이경섭 삼양패키징 대표가 서울 연지동 사옥에서 종이 소재로 제작된 음료 용기인 카토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양패키징 제공
이경섭 삼양패키징 대표가 서울 연지동 사옥에서 종이 소재로 제작된 음료 용기인 카토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양패키징 제공
이 대표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음료수 변질 사고가 나지 않았을 정도로 완벽하게 품질을 관리해 왔다”며 “‘을’도 아닌 ‘병’ 신세인 페트병 포장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했다.

삼양그룹 계열사인 삼양패키징은 국내 페트 패키징(포장)과 페트병에 내용물을 무균 상태로 넣는 아셉틱 음료 시장의 1위 업체다. 페트 패키징 시장에서 38%, 아셉틱 음료 시장에서는 83%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요즘엔 이 대표가 맘 편히 페트병 음료를 고를 수 있는 이유다.

삼양패키징은 2007년 국내 최초로 무균 페트 충전 설비(아셉틱)를 도입했다. 맛과 향이 떨어지고 음료가 변질될 위험이 있는 기존 고온 충전 방식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충전(充塡)은 빈 공간을 채운다는 뜻의 단어로 업계에선 음료를 병에 넣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보리와 옥수수수염차부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페트병 형태의 액상분유도 모두 아셉틱 기술로 제작된다. ‘절대 갑(甲)’이었던 음료 업체들이 삼양패키징에 먼저 손을 내미는 이유다. 2016년 기준 영업이익률이 13.1%로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4.5%)을 웃도는 비결이다. 작년 11월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도 했다.

어떻게 방어하나

아셉틱 음료시장이 커지면서 동원그룹 계열사인 동원시스템즈가 지난 6일 아셉틱 시장 진출을 선언하는 등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삼양패키징엔 위협이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10여 년간 축적한 기술력과 이를 바탕으로 한 품질은 이미 글로벌 수준”이라며 “아셉틱 설비 증설 등을 통해 다품종 소량생산 요구에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고기능성 제품인 카토캔과 해외시장 공략을 성장 방향으로 꼽았다. 카토캔은 종이 소재로 제작된 캔 형상의 음료 용기다. 무게가 페트병의 절반인 데다 생산과 재활용 과정에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은 친환경 제품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낮설지만 일본과 유럽 등에선 음료와 화장품 포장재로 쓰이고 있다. 카토캔은 아셉틱 기술이 있어야만 생산이 가능하다. 이 대표는 “오는 4월부터 음료 맛과 풍미를 더하면서도 친환경적인 음료 용기인 카토캔을 양산할 계획”이라며 “카토캔과 해외시장 진출을 통해 2020년까지 매출 90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작년 4월부터 완제품 해외수출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의 유명 커피업체인 자바 프리마사의 ‘루왁 커피’가 주인공이다. 삼양패키징이 음료 개발부터 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맡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이다. 더운 날씨 때문에 음료 수요가 많은 이슬람권 국가 수출 확대를 위해 한국이슬람교중앙회로부터 할랄 인증도 받았다. 이 대표는 “올해 1월 수출 물량이 작년 7개월치를 웃돌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며 “베트남 음료 업체와도 패키징 사업을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