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 생활 353일 만에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앞에는 삼성그룹 경영 현안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삼성처럼 큰 기업의 경영현장을 1년 가까이 비워 놓은 만큼 차분하게 살펴봐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다.

가장 큰 과제는 삼성그룹의 중장기 경영전략 시스템을 복원하는 일이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오너-미래전략실(옛 비서실)-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삼각축을 중심으로 운영돼왔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이 부회장이 수감되고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면서 과거 오너와 미래전략실이라는 두 개의 ‘중심축’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로 인해 중장기 경영전략 수립이나 미래 먹거리를 위한 대형 인수합병(M&A) 작업은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핵심 계열사를 중심으로 전략과 인사 중심의 ‘미니 컨트롤타워’를 구성했지만 아직 역할과 기능이 자리잡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로 인해 한 해 50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벌어들이는 삼성전자 내부에서조차 사업 유지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투자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올 정도다.

반면 비용 절감을 강조하는 재무 라인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삼성의 한 임원은 “지난 1년 동안 총수 부재 상황이 펼쳐지면서 혁신과 도전보다 현상을 유지하려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고 전했다.

그나마 삼성전자는 괜찮은 편이다. 다른 계열사는 말 그대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삼성물산은 사장단 인사도 당초 예정보다 한 달가량 늦게 발표할 정도로 내부 진통을 겪었다. 여기에 물산-중공업-엔지니어링으로 이어지는 중공업 부문의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 금융 계열사의 경영시스템을 정상화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이들 금융사는 당초 계획한 금융지주사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과 사장단 인사 등이 지연되면서 시장 점유율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금융당국이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인 대기업 금융그룹에 대한 통합금융감독을 올해부터 본격 추진할 계획이어서 대비가 필요하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