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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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의 서비스산업 성적표는 역대 최악이었다. 중국과 외교 갈등으로 한국을 찾는 최대 큰손이었던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했고 높아진 소득수준에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내국인은 크게 증가하면서 여행수지가 사상 최대 적자(171억7000만달러)를 기록한 탓이다.

여행수지 적자는 고스란히 서비스수지 적자로 이어졌다. 344억7000만달러(37조5100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서비스수지 적자는 20년 연속 경상수지 흑자 행진의 빛도 가렸다. 수출이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4년 만에 불황형 흑자에서 탈출했지만 서비스수지 악화로 흑자 폭이 쪼그라들어서다.
반도체로 벌어들인 돈 3분의 1, 해외여행으로 썼다
여행수지 ‘눈덩이’ 적자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서비스수지 적자 344억7000만달러 중 절반 가까이(171억7000만달러)가 여행수지 적자였다. 지난해 반도체로 벌어들인 돈의 3분의 1에 달한다. 지난해 반도체 순수출액(수출액-수입액)은 579억4000만달러다.

가장 큰 원인은 급감한 중국인 관광객이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과의 갈등으로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은 416만9000명으로 전년 대비 반 토막(48.3%) 났다. 2016년 기준 중국인 관광객은 한국을 찾는 전체 외국인 입국자의 약 47%에 달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내국인의 해외여행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해외로 떠난 출국자 수는 전년 대비 18.4% 증가한 2649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이 역시 역대 1위다.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 영향도 크다. 지난해 원화 가치는 12.8% 절상되며 13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원화 강세는 내국인의 해외여행 수요를 부추기고 외국인이 한국 방문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여행수지 외에 서비스수지를 구성하는 건설수지와 운송수지도 부진했다. 특히 해운업 불황 여파로 운송수지는 53억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사상 최대 적자다.

경상수지 784억6000만달러 흑자

세계 경기 회복과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상품수지는 1198억달러 흑자를 냈다. 2015년에 이어 역대 2위 흑자 규모다. 수출은 5773억8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12.8% 증가했다. 2013년(2.4%) 이후 4년 만의 첫 증가다. 수입은 4574억9000만달러로 16.4% 늘었다. 수입 역시 2011년(34.2%) 이후 6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설비투자 수요가 꾸준히 늘어난 영향이다. 과거 경기 불황기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 흑자를 내는 불황형 흑자에서 벗어났다.

경상수지는 20년 연속 흑자를 냈지만 흑자 폭은 축소됐다. 지난해 경상수지는 784억6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사상 최대의 서비스수지 적자로 전년(992억4000만달러)에 비해선 21%가량 흑자 폭이 줄었다.

전문가들은 만성적 서비스수지 적자에서 벗어나려면 서비스 산업 인프라를 정비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수요를 국내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려면 규제를 없애 의료관광산업을 키우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출국자 증가 폭만큼 늘 수 있도록 관광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8년째 이어지고 있는 여행수지 만성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가계 소득 증가가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는 소득주도 성장의 선순환도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내국인 출국자가 외국인 입국자의 두 배를 웃도는 기형적인 상황을 막으려면 해외에 견줄 만한 경쟁력을 갖춘 국내 관광지역을 육성해 국내 여행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 여행 증가를 나쁘게만 볼 수 없지만 관광 인프라 확충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