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렉이 후원하는 프로투어급 사이클팀 ‘트렉-세가프레도’는  투르 드 프랑스를 비롯한 각종 세계 프로사이클링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트렉이 후원하는 프로투어급 사이클팀 ‘트렉-세가프레도’는 투르 드 프랑스를 비롯한 각종 세계 프로사이클링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1975년 미국 위스콘신주에 사는 청년 리처드 버크와 베빌 호그는 ‘왜 최고급 자전거는 미국이 아니라 유럽에서만 만들어지는가’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최고 성능을 발휘하는 자전거를 미국에서 만들자며 의기투합한 두 남자는 바로 회사를 설립해 이듬해 워털루시의 창고에서 자전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제작 첫해 904대를 만들어낸 직원 5명 규모의 작은 회사였던 트렉은 이제 연간 10억달러(약 1조원)의 글로벌 매출을 올리는 미국 1위 자전거 기업으로 성장했다. 자전거 마니아들은 트렉을 스페셜라이즈드, 자이언트 등과 함께 글로벌 3대 자전거 기업으로 꼽고 있다.

◆업계 최고 기술력으로 초경량 프레임 제작

미국 위스콘신주 워털루시에 있는 트렉 본사 전경.
미국 위스콘신주 워털루시에 있는 트렉 본사 전경.
트렉 자전거는 미국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번쯤은 타본 친숙한 브랜드다. 한국 동호인이 트렉을 ‘미국의 삼천리자전거’라고 부르는 이유다. 창업 초기 중저가 제품을 생산하며 3년 만에 200만달러 매출을 달성한 트렉은 1980년대부터 생산량을 늘렸다.

트렉은 1992년 OCLV라 이름 붙인 신개념 탄소(카본) 섬유를 공개했다. 철, 크로몰리, 알루미늄 등 다양한 재질이 자전거에 쓰였지만 더 가벼운 프레임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었다. 트렉은 미국 외 국가로의 반출이 제한된 카본 소재로 가볍고 튼튼한 자전거 제작에 성공했다. 지난해 출시된 도로용(로드) 사이클 올뉴에몬다의 프레임 무게는 640g이다. 카본 프레임 중에서도 1㎏을 넘는 경우가 흔한 점을 감안하면 ‘초경량’으로 불릴 만하다. 자전거 무게 100g을 덜어내기 위해 100만원을 투자한다는 마니아들에게 매력적인 무게다.

트렉은 자신들이 제작한 최고급 자전거를 도로 및 산악 프로선수들에게 후원하고 있다. 트렉이 후원하는 프로투어급 사이클팀 ‘트렉-세가프레도’는 세계 최고 권위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알베르토 콘타도르, 파비앙 칸첼라라, 앤디 쉴렉, 옌스 보이트 등 유명 선수들이 트렉 자전거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트렉이 초경량 프레임 등을 생산할 수 있는 배경에는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가 있다. 트렉 엔지니어 수는 90여 명으로 업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현재 많은 유명 브랜드가 물량 대부분을 중국에서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하고 있다. 트렉도 일부 물량을 외국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미국 내 생산(made in USA)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포브스는 “트렉의 빨간색 헛간은 휴렛팩커드를 만든 전설적인 차고를 연상하게 한다”며 “자전거 경주에서 상징적인 브랜드가 된 트렉 덕분에 워털루는 최고급·맞춤형 자전거의 실리콘밸리가 됐다”고 평가했다.

◆차별화한 보증 정책으로 신뢰 얻어

존 버크 트렉 CEO
존 버크 트렉 CEO
자전거는 도로와 산길을 빠르게 달리기 때문에 항상 낙차(落車)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고가의 자전거를 타는 동호인들은 자전거에서 넘어지면 자신의 상처를 확인하기보다 자전거가 부서지지 않았나 먼저 확인할 정도다. 트렉은 제품에 대한 자부심으로 1976년 처음 만든 프레임에도 평생보증(라이프타임 워런티)을 제공한다. 포크, 서스펜션 등 각종 부품에 대해서도 일정 기간 보증이 된다. 헬멧 구입 후 1년 안에 충돌사고로 파손되면 이를 무상 교환해주는 제도도 있다.

탄소섬유 자전거는 강한 외부 충격을 받으면 일명 ‘크랙’이라는 균열이 발생한다. 아무리 작은 크랙이라도 주행 안전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자전거를 버려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트렉은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감안해 ‘트렉 카본 케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프레임이나 부품 교체 때 할인받을 수 있다. 이는 자전거업계에서 품질에 대한 자신감으로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사주로 직원 애사심 높여

트렉은 창업주인 리처드 버크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존이 1997년부터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자전거 기업이지만 아직까지 기업공개(IPO) 없이 가족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사주기업인 것도 회사 특징이다. 존 버크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족기업의 운영 과제 중 하나는 직원들이 같은 성(姓)을 쓰지 않아도 유대감과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사주는 회사의 재정적 성공을 뒷받침하는 직원들을 위한 것으로, 트렉은 위스콘신에서 가장 큰 우리사주기업”이라고 덧붙였다.

존은 선대의 창업 이념인 ‘미국에서 만들어진 최고의 자전거’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 경쟁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비싼 만큼의 가치를 하는 좋은 자전거’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환경, 건강, 교통 정체 등 세 가지 문제를 감안했을 때 앞으로 20년간 자전거업계에 기회가 있다고 예상했다.

◆국내 자전거 문화 선도에 앞장

트렉은 2011년 한국에 트렉바이시클코리아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글로벌 자전거 브랜드들은 자사 제품을 독점 판매하는 ‘콘셉트스토어’와의 거래를 선호하고 있다. 다만 트렉은 콘셉트스토어에 동일한 디자인을 고수하는 대신 각 매장의 고유한 정체성을 내세우고 있다. 서울 성남 부산 등지에 있는 매장들은 지역의 자전거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동호인 라이딩, 정비 교육, 피팅 서비스 등의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연다.

트렉바이시클코리아는 지난해 11월 ‘ABC 안전 라이딩 캠페인’이라는 이색 행사를 개최했다. 트렉이 제시한 ABC는 △언제나 전조등·후미등을 사용하라(always on) △움직이는 신체 부위를 반사 재질로 강조하라(bimotion) △적절한 의류 착용으로 대조 효과를 극대화하라(contrast)는 뜻이다. 야간 교통사고가 빈번한 상황에서 자전거 이용자가 먼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안전 캠페인은 동호인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박상익/이우상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