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새해를 맞아 반도체 분야에서 또 하나의 파격을 시도한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디자인하우스(설계 테스트 및 보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제조)로 영역이 나뉘어 있는 기존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시장에서 세 가지 모두를 융합하는 사업 조직을 신설했다. 경쟁력 강화를 통해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대만 TSMC를 추격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 '파괴적 혁신' 나섰다
인력도 대폭 충원

15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파운드리사업부는 최근 SAFE라는 조직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SAFE는 ‘삼성의 진보된 파운드리 생태계(samsung advanced foundry eco-system)’의 약자로 파운드리사업부가 본연의 제조 영역을 넘어서 반도체 설계와 디자인까지 담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가전업체와 자동차업체 등은 자신들이 원하는 시스템 반도체를 조달할 때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에 설계를 의뢰한다. 디자인하우스는 이렇게 작성한 설계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시험한 뒤 시제품을 제작한다. 삼성전자 같은 파운드리업체는 이 과정을 통과한 제품을 생산해 고객사에 넘겨준다.

SAFE를 통해 ‘팹리스→디자인→파운드리’로 이어지는 수직적 단계를 벗어난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계획이다. 팹리스의 ‘수요 분석’과 ‘개발전략’, 디자인업체의 일부 시제품 생산 역할 등으로 비즈니스 실행 영역을 확대해 사업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칩 설계 및 디자인 전문인력도 1500여 명으로 늘렸다. 회사 관계자는 “팹리스가 대략의 설계도와 사양을 제시하면 칩 설계 완성부터 제조, 후공정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어 그만큼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달아나는 TSMC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지만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 이상은 여전히 시스템 반도체가 장악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 메모리 반도체를 접은 인텔이 2016년까지 매출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중앙처리장치(CPU) 등 시스템 반도체의 압도적 우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메모리 위주 사업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최근 몇 년간 파운드리사업 역량도 지속적으로 끌어올려 왔다. 시장 자체가 워낙 크기도 하지만 D램과 낸드플래시 시황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는 사업 실적을 안정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라는 사업 분야 자체를 창조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TSMC를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품종 소량 생산을 주축으로 하는 파운드리는 소품종 대량 생산의 메모리 반도체와는 본질적으로 경쟁력의 요건이 다르다. 게다가 TSMC는 공정 미세화에서도 삼성전자보다 한발 앞서 있다. 올해부터 7나노미터(㎚·1㎚는 1억분의 1m)를 기반으로 양산에 들어가는 퀄컴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스냅드래곤 855를 삼성전자에 한발 앞서 수주했다. TSMC는 애플, 삼성전자는 퀄컴의 주문 물량을 독점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SAFE 등을 중심으로 한 고객친화적인 서비스 강화는 삼성전자의 시장 입지를 넓히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SAFE를 앞세워 TSMC와 곧바로 정면승부를 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추격을 본격화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