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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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 갔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로 틀어진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기업이 등장한다. 롯데다. 사드의 가장 큰 피해자지만 누구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기업. 롯데의 악몽은 지난해 4월 시작됐다.

2016년 4월13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다. 정국 주도권은 야권으로 넘어갔다. 여당 내부에서 파열음이 났다. 정부는 위기에 몰렸다. 민심을 돌려놓을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연이었을까. ‘형제의 난’을 겪은 롯데에 검찰 200여 명이 들이닥쳤다. 전문가들은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 롯데의 약한 고리였다”고 했다. 한동안 정치적 이슈는 롯데에 묻혀버렸다. 석 달 뒤 정부는 사드 부지로 롯데골프장을 결정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고민했다. 국가 안보를 위해 땅을 내놓는 것은 의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 대가가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정부에 골프장 부지를 다른 땅과 교환하지 말고 “수용해 달라”고 청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중국에 설명할 근거라도 달라는 읍소였다. 정부는 거부했다. 작년 12월의 일이다.
롯데 사드 피해 2조… 기업에 국가는 무엇인가
1년이 지났다. 롯데의 상황은 참담하다. 중국에서 거의 쫓겨나는 상황이다. 중국 롯데마트는 팔려고 내놨다. 백화점 사업은 적자의 연속이다. 정권이 교체되고 뭔가 변하기를 기대했다. 달라지긴 했다. 중국은 한국 관광 금지를 해제했다. 하지만 “롯데면세점과 롯데호텔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올해 롯데가 사드로 인해 입은 금전적 손실만 2조원에 달한다. 세계 1위가 되려던 롯데면세점은 꿈을 포기하기 직전이다. 그래도 롯데는 아무 말 못한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신 회장은 곧 경영비리 관련 선고를 받는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정부는 못 본 척한다. “억울한 것은 알지만 지난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식이다. 장관을 지낸 한 원로는 “정치적·행정적 무책임의 극치”라며 “정권이 교체됐지만 정부는 연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기업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정부가 나선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압박한다. 유럽 국가들은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소송도 불사한다. ‘한국에서 국가는, 정부는 기업에 어떤 존재일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정부 일을 대신 사과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롯데에 대한 침묵은 이해하기 힘들다. 기업을 봐주는 게 아니라 잘못된 정치와 행정을 바로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중국에서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진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