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최신형 스마트폰·효도 문신, 젊어지는 '효도 선물'
“아들, 휴대폰으로 노래 들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거랬지?”

"내 나이가 어때서"… 최신형 스마트폰·효도 문신, 젊어지는 '효도 선물'
스마트폰에 익숙지 않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전화로 ‘SOS’를 보낸다. 회의 준비에 바쁜 아들은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는다. 연신 “미안, 미안”을 말하던 어머니가 마음에 걸린 아들. 인공지능(AI) 스피커를 설치한다. 어머니가 원하는 노래 제목만 말하면 AI 스피커가 노래를 재생한다.

KT 기가지니 광고 내용이다. KT 관계자는 “이 광고처럼 IP(인터넷)TV나 스마트폰 작동이 서툰 부모님께 AI 스피커를 선물하는 자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AI 스피커를 통해 자주 검색된 가수에는 나훈아, 이문세, 이선희 등이 올라 있다. 스마트폰 검색순위와는 완전히 다른 리스트다.

AI 스피커, IoT… ‘스마트’해지는 효도

KT의 AI 스피커 ‘기가지니’ 광고 한 장면
KT의 AI 스피커 ‘기가지니’ 광고 한 장면
효(孝)산업이 젊어지고 있다. 과거 자녀들은 부모에게 주로 건강보조식품 등 ‘건강’과 관련한 제품을 선물했다. 최근에는 자신이 사용한 뒤 만족한 정보기술(IT) 기기, 뷰티 서비스 등을 선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충북 보은에서 호두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오수미 씨(34)는 집안에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설치했다. 치매를 앓고 있는 80대 시부모와 올해 태어난 막둥이까지 세 아이를 집에 두고 농장으로 향할 때마다 불안했기 때문. 오씨는 현관문에 열림감지 센서를 부착해 문이 열릴 때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오도록 설정해뒀다. 농사일에 바빠 저녁 늦게까지 집을 비울 때는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전등 스위치나 가스 스위치를 확인한다. IoT 기술을 활용해 고향집에서 혼자 지내는 부모를 챙기는 자녀가 늘어나자 LG유플러스는 올해 5월 어버이날을 기념해 ‘부모안심 IoT 패키지’를 내놓기도 했다.

‘효도폰=폴더폰’도 옛말이 됐다. 직장인 정모씨(39)는 최근 일흔을 넘긴 아버지에게 최신형 스마트폰을 선물했다. “등산회 친구들이 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등으로 모임을 알려줘 불편하다”는 아버지의 말 때문이다. 정씨는 “폴더형 스마트폰을 사려 했더니 ‘젊은 사람들이 쓰는 것과 똑같은 걸로 써보고 싶다’고 하셔서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드렸다”고 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60대 이상 고객 가운데 스마트폰 이용자 비율은 74%에 달한다.

‘효도 성형’에서 ‘효도 문신’, ‘효도 네일’로

구독자 10만명 돌파한 ‘최고령 뷰티 유튜버’
구독자 10만명 돌파한 ‘최고령 뷰티 유튜버’
시니어들이 외모에 높은 관심을 갖자 ‘뷰티 효도’를 택하는 자녀도 늘고 있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평균수명이 늘어 고령층도 더 이상 ‘뒷방 늙은이’에 머물지 않고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지속한다”며 “그러다 보니 외모 가꾸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뷰티업계에서도 소비자층을 넓히기 위해 고령층을 위한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김다혜 씨(26)는 지난달 아버지에게 ‘효도 문신’을 선물했다. “나이가 드니까 눈썹 숱이 줄어 인상이 약해 보인다”며 속상해하는 아버지와 함께 눈썹에 반영구 문신 시술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부모님께 눈썹을 선물해보세요” “반영구 문신으로 부모님께 젊음을 선물하세요” 등의 홍보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4년째 반영구 문신·네일아트숍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33)는 “초창기에는 젊은 고객이 또래 친구들끼리 속눈썹 연장술, 반영구 문신 등을 받으러 찾아왔지만 최근에는 모녀·고부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딸이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셋이 나란히 시술을 받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고령 뷰티 유튜버’라 불리는 박막례 씨(71)의 인기도 ‘시니어 뷰티’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평범한 ‘동네 할머니’였던 박씨는 올해 초 손녀 김유라 씨가 SNS에 올린 호주 여행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손녀와 함께 화장법 영상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조회 수가 100만이 넘어가는 영상도 여러 개다. 박씨는 한 영상을 통해 “화장품을 사러 갔는데 매장 점원이 ‘할머니, 이건 젊은 사람들이 쓰는 거예요’라고 하더라”며 “우리(노인)는 보는 눈이 없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 영상에는 “나이에 상관없이 외모를 가꿀 수 있고 화장품도 살 수 있는 건데 점원이 무례했다”며 공감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박씨는 지난 9월 ‘실버 플레이 버튼’ 상을 받기도 했다. 이 상은 유튜브가 구독자 10만 명 이상을 보유한 유튜버에게 준다.

액티브 시니어가 소비 큰손으로 떠올라…

전문가들은 평균수명이 늘고 고령층의 소비 트렌드가 변함에 따라 ‘효도 상품’ ‘실버 상품’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병관 광운대 소비자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의 정형화된 효도 상품은 사라지고 고령층도 다변화한 욕구를 소비로 표현하고 있다”며 “고령층의 변화하는 욕구가 산업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고 부르는 이들이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는 얘기다. 은퇴 이후에도 소비생활과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50~60대들. 이들은 건강과 구매력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고령층의 ‘체감 나이’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5년 시행한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이 생각하는 ‘노인의 기준’은 평균 71.7세였다. 법적 노인은 65세다. ‘스스로를 젊다고 생각하는 고령층’, 이들이 만들어낼 또 다른 산업은 무엇일까 더 궁금해진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