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이사가 재닛 옐런 Fed 의장 후임으로 지명될 것이란 미국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변호사로 월가 투자은행 등을 거친 파월 이사가 Fed 의장을 맡으면 1979년 이후 40여년 만에 경제학 박사 학위가 없는 비경제학자가 Fed를 이끌게 된다.

파월 이사는 실용주의자로 현재와 같은 점진적 기준금리 인상을 선호하며, 금융규제 완화를 주장해 왔다. 월가 출신이 Fed까지 이끌게 되면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윌버 로스 상무장관 등 월가 출신으로 짜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경제팀의 경제정책도 한층 탄력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 Fed '파월 시대' 열리나… 지명 땐 금융규제 완화 탄력
◆실용주의자…기존 정책 유지할 듯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비롯한 미 언론은 지난 3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순방을 앞둔 2일 Fed 차기 의장으로 파월 이사를 지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WSJ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만큼 여전히 최종 결정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현재 파월 이사 쪽으로 마음이 기운 상태”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이사가 Fed 통화정책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고, 친(親)시장주의자로 금융규제 완화 등을 추진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월 이사는 시장도 선호하는 인물이다. 2012년 Fed 이사로 지명된 이후 제3차 양적완화와 점진적인 금리 인상, 최근 Fed 보유자산 축소 방침에 이르기까지 Fed의 모든 사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는 지난 6월 “점진적으로 금리 인상을 계속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밝혔고, 9월엔 Fed가 4조5000억달러 규모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줄이는 데 찬성했다.

리처드 피셔 전 댈러스연방은행 총재는 파월 이사에 대해 “‘매’도 아니고 ‘비둘기’도 아닌 온건주의자”라고 말했다. 반면 차기 Fed 의장 경쟁자로 알려진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기준금리 인상에 적극적인 매파로 통한다. 중앙은행이 실질 국내총생산(GDP)과 잠재 GDP 간 차이인 GDP갭, 실질 물가상승률과 목표 물가상승률 간 차이인 인플레갭에 가중치를 부여해 기준금리를 정해야 한다는 ‘테일러 준칙’을 고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공화당원인 파월은 2012년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 때 Fed 이사로 지명돼 활동하고 있다. 1988년 이후 처음으로 야당 인사가 Fed 이사에 올라 주목받았다. 정치적 이념을 내세우기보다는 실용주의적이고 온건한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1년 워싱턴DC의 비영리정책기관인 초당파정책센터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할 때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정부 부채한도 위기에 빠지자 “부채한도를 높이는 게 필요하다”며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했다.

◆친시장주의자…금융규제 완화할 듯

폴 볼커가 Fed 의장에 임명된 1979년 이후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옐런 등 Fed 의장은 모두 경제학자 일색이었다. 공화당과 금융업계에선 Fed 의장이 “실물 경제를 모른다”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파월은 이런 불만을 잠재울 최적의 인물로 꼽힌다. 1953년 워싱턴DC에서 태어난 그는 변호사인 부친의 영향을 받았다. 미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학사), 조지타운대에서 법학(박사)을 공부했다. 1984년까지 로펌 등에서 근무한 뒤 월가에 뛰어들어 실물 경험을 쌓았다. 1984~1990년 투자은행 딜런리드앤드컴퍼니에서 일하며 부사장까지 올랐다.

관직 경험도 풍부하다. 1990~1993년 미 재무부에서 근무했다. 딜런리드앤드컴퍼니 회장이던 니컬러스 브래디가 재무장관을 지낼 때다. 1992년 국내재무담당 차관보로 승진해 금융정책, 국채시장 관리부문 등을 맡았다. 1993년 다시 월가로 돌아가 뱅커스트러스트, 딜런리드앤드컴퍼니 등을 거쳤으며 1997~2005년 사모펀드운용사 칼라일그룹에서 파트너로 일했다.

민간 금융업계에 오래 몸담아온 파월 이사는 투자은행 규제인 도드-프랭크법 개혁을 주장해 왔다. 그는 6월 의회에서 “은행들이 자기자본으로 위험한 투자를 하지 못하게 막는 볼커룰이 완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대형 은행들이 매년 받아야 할 스트레스테스트(건전성 테스트) 중 일부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