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탈원전 정책은 '대다수 국민'의 선택?
정부가 24일 발표한 ‘에너지 전환 로드맵’에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제외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탈(脫)원전 공약이 수정 없이 그대로 담겼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쪽으로 결론내면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일각의 예상은 결국 빗나가고 말았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국민 대다수가 탈원전에 공감했다”며 “탈원전은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백 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 전문가들은 “근거가 뭐냐”며 의아해한다.

백 장관은 공론화위가 시민참여단 471명을 대상으로 한 마지막 4차 조사에서 ‘원전 축소’ 응답 비율이 53.2%로 ‘유지’(35.5%) ‘확대’(9.7%)보다 높게 나온 것을 근거로 삼았지만, 이 조사 자체가 정당성을 갖는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신고리 건설 재개’(59.5%)를 선택한 답변자들이 심리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원전 축소’를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이 답변 자체로 현 정부의 탈원전을 지지한다고 보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실제로 2만여 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1차 조사에서는 원전 유지(31.1%)와 확대(12.9%) 응답 비율을 합치면 44%로 축소(39.2%)보다 많았다. 더구나 ‘몇 년에 걸쳐 원전을 축소하는 게 바람직한가’ 등의 구체적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4차 조사 결과도 원전 유지와 확대 의견을 합하면 45.2%여서 “대다수가 탈원전에 공감한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산업부 관계자는 “백 장관 발언은 공론조사를 토대로 한 게 아니라 대선에서 승리했으니 공약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5월 대선에서는 탈원전이 후보들 간 승부를 가를 만큼 첨예한 이슈는 아니었다. 문 대통령 지지자 중 탈원전에 부정적인 이들도 있다. “국민 대다수가 지지한다”는 말을 쓸 때는 그에 대한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다.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